2025년 7월 19일 토요일

부정선거 주동자 + 외

양정철 / 楊正哲
(1964년 7월 4일 ~)
민주당 선거책사
중국 공산당 '당교'와 정책협약 맺겠다



윤호중 / 尹昊重
(1963년 3월 27일 ~)



조해주 / 曺海珠
(1955 ~)
대한민국 제17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문재앙 캠프 공명선거특보 출신
전자투표기 들여온사람



고한석
(1965 ~)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
전 SK China(베이징) 인터넷/IT 사업개발 팀장 겸 현지 자회사 CEO
전 열린우리당 전략기획실 정세분석국장



이해찬 / 李海瓚
(1952년 7월 10일 - 2026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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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익명으로 별도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정치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주 임무로 하는 선관위의 실무 총책임자가 선거 관리의 대상인 정치인들과 비선(祕線)으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세컨드폰으로 정치인과 소통 논란…데이터 삭제 후 반납



김용희
A-WEB 사무총장

브누아 케네데 / Benoît Quennedey

브누아 케네데 / Benoît Quennedey
(1976 ~)

2003 프랑스 상원 행정관 임명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북한과 프랑스의 교류를 진착하고 비공식적인 외교 창구 역할도 겸하는 Association d'amitié franco-Coree의 회장을 겸하였다.

2018년 북한에 기밀을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2021년 무죄로 판결되었다.

2022년 프랑스 상원에 복직하였지만 2023년 프랑스 상원은 그가 북한의 독재 정권을 옹호하고 그와 접촉을 유지한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징계위원회를 개최한 후 그를 해임하였다.


2014년 6월 25일 파리 트로카 대로에서 위안부 수요집회 지지발언


관심사 :
파리 교민들과 박근혜 퇴진집회 참여
전교조 법외노조 판정, 철도노조 파업, 위안부 문제
세월호 사건
남한의 만주화투사


오마이뉴스 목수정 기자 (이재명(찢) 후원회장) 프랑스 활동 좌파 작가
2016-17년 국내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가 열리던 시기 파리에서 촛불집회를 주도
2014년 7월 2일 기사 : 국정원이 나를 투사로 만든다 - 어느 프랑스인의 고백

프랑스-한국 친선협회 부회장

한국의 민주주의가 2000년대 중반부터 추락했다며 민주주의 추락을 막아햐 한다고 한다.

김대중 햇볓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북한인권문제 대한 견해 : 밖에서 서구의 잣대로 비판하는건 의미가 없다.

당신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의 변혁을 향한 의지로 결정된다.


북한 간첩혐의 체포

좌파인명사전 - 문학

조정래 / 趙廷來
(1943년 8월 17일 ~)
작가 (태백산맥, 아리랑)
정경심 탄원서 제출
"일본유학에 갔다오면 무조건 친일파"
2024.02.22 ‘조국신당’ 후원회장 합류








한 강 / 韓 江
(1970년 음력 11월 27일 ~)
소설가
노벨상 수상자
'6.25 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 발언

25.07.16 세월호 외력설 퍼뜨린 '자로' 국보법 위반 의혹

 네티즌 수사대 "자로"

왕후닝 / 王沪宁

 


한동훈

 

















이왕가(李王家)






이왕가(李王家)는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조선왕실은 한일병합 이후에도 일본한테 왕공족 작위 받고
놀러다니면서 삶.


일본 본토 귀족 < 이왕가 < 천황가 순으로 높은 신분이었고
이왕가 대부분이 일본제국군에서 근무도 했음.




해방 후 한반도에 공화정이 들어선 뒤, 공화국 정부나 지식인 계층에서 사상에 따라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할 가치가 있는 군인이나 인텔리 세력보다도 더 증오받았던 것은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던 조선 왕공족이었다. 봉건주의를 혐오한 북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이들의 입국조차 금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교체되며 '역사적 정통성'과 '민족문화의 자부심' 같은 맥락에서 구 조선 왕실에 대한 반감이 희석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궁>과 같은 가상 황실 드라마가 방영되며 황실 복원에 대한 열망도 고개를 들었을 정도였다. 역사연구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할 당시, 귀족 작위를 받은 많은 조선 및 대한제국의 인사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에 오른 데 반해 왕공족은 친일 논란에서 큰 주목을 받지 않았고 도의적으로 등재를 피해가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 한국인들 중 일본군 장교 출신 상당수가 친일파로 분류되었으므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군에 복무하였던 왕공족 또한 명단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논의 끝에 망국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나, 이들은 일본이 별다른 마찰 없이 대한제국을 편입하기 쉽게 하려고 왕공족 작위를 만들어 그들을 대우하였지 '협력에 대한 대가'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초대 운현궁 이희과 2대 운현궁 이준과 같이 친일 행위자 명단에 오른 이와 2대 사동궁 이건공처럼 아예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람도 있지만, 초대 사동궁 이강처럼 독립 운동의 의사를 보이거나 혹은 그의 아들 3대 운현궁 이우처럼 반일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 인물도 있기 때문에 모든 왕공족에게 친일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자들은 왕공족에 있던 이들은 왕공족에 들어갔다는 이유가 아닌, 실질적인 친일 행적이 있는지 여부로 친일파인가를 판단했다. 다만, 같은 식의 역사학적 관점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있어 동일하게 적용되었는지는 비교하기 쉽지 않다. (친일인명사전 문서의 논란 문단 참조)

영친왕과 이건은 1947년 신적강하 전까지 왕 및 공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우는 전쟁 중 원폭으로 사망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부터 쭉 조선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영친왕과 이우는 워낙 어릴 때 일본에 간지라 인질에 가깝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흥친왕 이재면 / 興親王 李載冕 (완흥군 / 完興君)
(1845년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
한일합병조약 체결시 황족대표
은사공채 하사



영선군 이준용 / 永宣君 李埈鎔
(1870년 7월 23일(음력 6월 25일) ~ 1917년 3월 22일(음력 2월 29일))
한일병합 뒤 일제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에게 은사금을 주었다.
일제는 그에게 16만 8천원의 은사금을 지불해 주었다.
1910년 8월 중추원 고문직을 받았다
12월 28일 일본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일본 육군 소장에 임명되었다.
신궁봉경회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