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1일 수요일

일제시대 31대본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불교를 체계적으로 통치하고 감독할 목적으로
우리나라 전국 사찰을 31구역으로 나누었다.
이를 31본산이라고 한다.

1911년 사찰령을 공포할 즈음에는 30본산 제도였으며,
1924년 구례 화엄사가 본산이 되면서 31개 사찰로 늘었다.
강점기에 도입된 아픔을 간직한 31본산제도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을 때까지 계속됐다.

〈불교학대사전〉에는 본산(本山)이란 용어에 대해
“①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파의 중심도량.②이산, 이절이란 뜻. 우리 절. 당사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되어 있다.
31본산은 ①의 뜻에 부합한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본산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종(一宗), 일파(一派)의 본종이 되는 큰절. 각 말사(末寺)를 통할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31 본산제였으나 광복 후 폐지되고 현재는 25본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31본산 사찰은 다음과 같다.(행정구역은 일제강점기 기준)
△경기도 광주 봉은사, 양주 봉선사, 수원 용주사, 강화 전등사
△충청북도 보은 법주사
△충청남도 공주 마곡사
△경상북도 달성 동화사, 영천 은해사, 의성 고운사, 문경 김룡사, 경주 기림사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동래 범어사
△전라북도 전주 위봉사, 금산 보석사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 장성 백양사, 순천 송광사,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
△강원도 간성 건봉사, 고성 유점사, 평창 월정사
△황해도 신천 패엽사, 황주 성불사
△평안남도 평양 영명사, 평원 법흥사
△평안북도 영변 보현사
△함경남도 안변 석왕사
△함경북도 함흥 귀주사





출처 :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74919

2026년 1월 23일 금요일

제외? 군인

양칠성 / 梁七星
창씨개명 : 梁川七星
(1919년 5월 29일 - 1949년 8월 10일)

현재 자카르타의 칼리비타 국립 묘지에 안장돼 있다.



https://namu.wiki/w/%EC%96%91%EC%B9%A0%EC%84%B1

2026년 1월 19일 월요일

연극/영화 - 보류인물

김성춘 金聖春
(1903년 8월 1일 - 1977년 9월 5일)
영화 조명기사
친일 영화 다수 제작 참여
대한민국 영화 조명기사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영화기술협회 회장



박향민 / 朴鄕民
(1916 - 1945)
조선극작가동호회 회원
극단 성군 문예부원
친일가요「전선의 달」작사



서일성 / 徐一成
(1906 - 전쟁피살)
조선연극협회 이사
극단 성군 대표
1회 연극경연대회 성군 참가작 「산돼지」로 연기상 수상



이백산 / 李白山
(? - 광복월북)
조선연극문화협회 소속 이동극단 제2대 대장



조천석 / 朝天石 (박노아 / 朴露兒)
(? - 전쟁실종/월북)
친일 연극 참가



한형모 / 韓瀅模
(1917년 4월 29일 - 1999년 9월 22일)
친일 영화 다수 촬영·감독
대한민국 영화인. 영화감독, 촬영감독, 영화제작자.

2026년 1월 17일 토요일

수양동우회, 흥업구락부 사건 전향자(변절자)

1941년 5월 5일 2심 판결이 파기되었고 1941년 11월 17일 전원 무죄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많은 동우회원들이 일제의 회유와 협박으로 인해 친일로 전향한 뒤 일제에 협력하게 되었고
일부 인사들은 옥사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삶조차 영위하기 어렵게 되었다.

42명이 최종 기소되기 전인 1938년 6월 18일 직전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던
이묘묵(李卯默)
정영도(鄭英道)
김여제(金與濟)
갈홍기
김여식(金麗植)
전영택(田榮澤)
류형기(柳瀅基)
이명혁(李明赫)
박태화(朴泰華)
차상달(車相達)
하경덕(河敬德)
현제명
홍난파
등 13인의 흥사단원과

김기승(金基昇)
김노겸(金魯謙)
노진설
이기윤(李基潤)
최봉칙(崔鳳則)
등 5인의 동우회원 등

18인이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친일 단체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에 가입하였으며
이들은 8월 18일 흥사단으로부터 출단 처분을 받았다.

이어서 같은 해 11월 3일 예심 보석으로 풀려난
이광수
주요한
송창근
등이 전향성명을 발표하였고 이후

정인과
백낙준
이긍종
이용설
한석원(韓錫源)
윤하영(尹河英)
김동원
유억겸
등도 전향하여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행적을 보였다.

좌파판사

백대현
부장판사

공수처 내란관련 수사권있어

체포영장 집행 행위는 적법

공수처의 서부지법 영장청구, 관활 위반 미해당

김성훈, 공무원으로서 법령 준수 의무 위반

절차적 요건 경시하는 태도, 비난받아 마땅

재판부, 윤석열 대통령에 징역5년 선고




이성복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계엄 배상 인정
손해배상 책임 인정 판결

제외인물 - 경제

 

이만수 / 李晩秀
창씨개명 : 大平 晩秀
(1891년 7월 10일 - 1964년?)
경성고무공업사 사장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대한고무공업협회 부이사장
대한아연필협회 이사장
조선화학비료주식회사 사장
한국고무주식회사 사장
대한비료협회 이사장



이만수 창업주는 일제 말 창씨개명 후 '조선임전보국단'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39년 군산신사 개축비 1천 원,
1940년 전북 군산향군분회 사격장 건설비 명목으로 1,700원을 각각 냈고,
1944년에는 중일전쟁 관련해 일본 육군성에 국방비 16,000원을 낸 공로로
쇼와 덴노로부터 감수포장을 받는 등 친일 행적을 벌였다.
1945년 8.15 해방 후 해당 행적으로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5개월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럼에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