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4일 일요일

친북인명사전

 

  • 1.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미화 찬양한 자
  • 2.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찬양 선전한 자
  • 3.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대남 정책 및 주장을 옹호, 지지한 자
  • 4.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파괴를 선동한 자
  • 5. 민중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실현을 선전, 선동한 자
  • 6. 계급투쟁에 의한 민중 독재, 노동자 권력 수립을 주장한 자
  • 7. 의회민주주의와 국가사법체계를 파괴 선동한 자
현재까지 1차 명단만을 발표하고 무기한 연기에 빠졌다.
재야
강순정(연방통추 공동의장) 권오헌(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의장) 김광일(다함께 운영위원) 김승국(평화만들기 대표) 김종일(평통사 사무처장) 나창순(범민련 명예의장) 노중선(4월혁명회 상임대표) 문성현(전 민주노동당 대표) 민경우(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2] 박석률(민자통 의장) 박석운(노동인권회관, 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세길(새사연 연구위원) 배은심(전 반미여성회장)[3]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송갑석(전대협 동우회장)[4] 오종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윤원탁(실천연대 공동대표) 이경원(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이규재(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승구(이시우)(사진작가) 이승환(민화협 집행위원장·전 한청 의장) 이재춘(활동가) 이재현(현장실천연대 의장) 임동규(통일광장 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전상봉(공동성강화를 위한 서울시민연대 대표) 정광훈(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전 전농 의장) 정대연(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조덕원(21코리아 대표) 최열(환경재단 대표) 최일붕(다함께 대표) 표명렬(평화재향군인회 회장) 한상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목사) 한충목(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학계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강정구(동국대 교수) 김근식(경남대 교수)[5] 김세균(서울대 교수) 김수행(전 서울대 교수)[6] 서중석(성균관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신영복[7](성공회대 석좌교수) 안병욱(카톨릭대 교수·전 진실화해과거사위원장)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이장희(외국어대 교수) 이철기(동국대 교수)[8] 장상환(경상대 교수) 정해구(성공회대 교수) 조국(서울대 교수)[9]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종교
김민웅[10](목사·성공회대 교수) 김상근(목사·615 공동위 남측위원장) 문규현(신부·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문정현(신부·통일평화재단 이사장) 법타(스님·평화불교협의회 의장)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 진관(스님·불교인권위원장) 함세웅(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홍근수(목사·평통사 공동대표) 효림(스님·실천승가회 명예대표)
문화, 언론
김경호(국민일보 부장·전 기자협회장) 박종화(음악가) 백낙청(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백무산(시인) 신준영(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전 지 기자) 안영민(민족21 편집국장)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윤민석(가수) 이창기(자주민보 대표) 장명국(내일신문 사장) 정일용(연합뉴스 기자·전 기자협회장) 조정래(소설가) 황석영(소설가)[11]
법조계
김승교(변호사·실천연대 상임대표) 박원순(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임종인(변호사·전 국회의원)
의료
이상이(제주대 의대 교수)[12] 권정기(의사·전 진보의련 의장)
정치권·관계
강기갑(국회의원·민노당 대표) 권영길(국회의원) 김근태(민주당 상임고문·전 국회의원) 김창현(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 노회찬(진보신당 대표·전 국회의원) 손장래(민족21 고문·전 안기부 차장) 오영식(전 국회의원) 우상호(민주당 대변인) 이인영(전 국회의원) 이재정(전 통일부 장관)[13]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임종석(전 국회의원) 최규식(국회의원) 한상범(전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14]
해외
김명철(조미평화센터 소장·일본) 김현환(재미동포전국연합 부의장·미국) 노길남(민족통신 대표·미국) 박용(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일본) 송두율(독일뮌스터대 강사·독일)

2.3. 선정 과정[편집]

당초

미술 - 보류인물

 
송정훈 / 宋政勳
(1914 - ?)
단광회 회원
<조선징병제실시> 공동 제작
광복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될 때 친일 활동의 이력 논란으로  제외
1947 앙데팡당전을 조직



이봉상 / 李鳳商
(1916년 7월 27일 - 1970년 8월 4일)
결전미술전람회 다수 출품 및 입선
1952 부산에서 기조전(其潮展) 개최
1956 창작미술협회전 설립
19__ 서라벌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학) 미술과장
1958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학과장 및 회화과장
19__ 미술평론가
2004 "공인 받지 않은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봉상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로 지정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552만명 대사면…황석영·서경원씨등 2,304명 석방

 석방 대상자중엔 밀입북 사건으로 복역중인 서경원 (徐敬元) 전 의원.소설가 황석영 (黃晳暎) 씨.신인영 (辛仁永.68) 씨 등 미전향 장기수 6명을 비롯한 공안사범 74명, 95년 한총련 연세대 시위사태 관련자 등 학원사범 40명이 포함돼 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617722

2026년 5월 17일 일요일

경기동부연합 247명




이석기 / 李石基
임수경 / 林秀卿
이정희 / 李正姬
김재연 / 金在姸
김태년 / 金太年
이의엽 / 李義燁
이양수
양경수
오병윤 / 吳秉潤
김미희 / 金美希
박원순 / 朴元淳
손 솔 / 孫 率
한상렬 / 韓相烈
노수희 / 盧秀熙
편재승 / 片在承
윤원석
우위영
최호연
홍희진 / 洪憙眞
윤용배
정형주 / 鄭亨柱
김삼석
백승우 01
이승헌
백승우석기 / 李石基
임수경 / 林秀卿
이정희 / 李正姬
김재연 / 金在姸
김태년 / 金太年
이의엽 / 李義燁
이양수
양경수
오병윤 / 吳秉潤
김미희 / 金美希
박원순 / 朴元淳
손 솔 / 孫 率
한상렬 / 韓相烈
노수희 / 盧秀熙
편재승 / 片在承
윤원석
우위영
최호연
홍희진 / 洪憙眞
윤용배
정형주 / 鄭亨柱
김삼석
백승우 01
이승헌
백승우 02
안동섭
강성희 / 姜聖熙
한용진
신창현 / 申昌眩
홍성규 / 洪性奎
김기창
김영욱
김제남 / 金霽南
윤희숙 / 尹凞淑
김선동 / 金先東
장원섭 / 張元燮
정태흥 / 鄭泰興
이기수
이은정
김영섭
황윤주
김수철
손소희
신은미
신은숙
김율리
윤계향
김기용
정경옥
신태석
안진모
전현욱
노은희
이유승
남연호
홍은숙
김은승
강무영
이성종
주재택
정순임
김태훈
진창욱
오병일
박병주
황순임
김미경
김묘순
전지현
김영호
문재성
한영수
공부종
장석철
신욱희
문영복
김현기
소연영
곽규식
박상덕
김은희
김병조
김광종
김진여
김예정
김창희
김주희
김광련
천상덕
임택성
김정화
신진석
이종민
이수현
김판근
박순정
오영선
이관문
박미경
민춘식
김성준
김형준
고광혁
강정아
고재명
조재훈
김승오
황정주
안미현
박선주
김수경
박순정
강성일
김기범
서춘자
김대원
윤혜숙
김숙경
이영주
안광석
이봉열
최도남
한명진
김성기
최영신
이상훈
김성아
우혜영
김영남
김종연
안문숙
김현옥
한상훈
박지순
김대원
최지현
김지선
박우영
이광일
김경례
이영국
윤보희
성재원
김경모
최성영
최수현
최성은
이영복
성민제
김성수
한유진
김윤기
김찬천
김성택
김지연
나성현
정하준
류재근
민흥식
서은주
송광륜
엄병철
유정희
이연화
이향지
유은철
김지숙
라병득
권영환
한만성
서애란
김용욱
안광희
허근영
이기원
백승철
김영욱
김정록
황성현
김영범
박준마
조양원
엄경희
이명주
김민영
정남득
이명주
장은정
이상덕
심동섭
권혁찬
강영란
윤태봉
홍성호
김홍숙
윤태영
이상근
유수정
송금숙
김선동
정영섭
심문희
이경희
박미향
김봉용
박세화
조기천
이영일
황성효
김장미
전현숙
이승복
정수윤
송정현
나주철
이영춘
박기남
강명용
김연주
정해혁
최동석
오혜원
전권희
김먼석
박윤숙
조현경
홍성규
강은희
고영국
신현수
이진호
이현주
이정미
김경순
최종원
김수영
김기인
신천호
정영윤
이권기
류채규
오동환
김옥균
백선민
김양현
이현주
최연철
신미정
서기욱
김선정
강연희
이성윤
오재석
박경우
서기욱
박원권
이호진
김정희
원종수
김진성
최진미
김배곤
이송범
박준영
김은정
양은미
김기욱
신용욱
정은영
조민오
황찬명
김동욱
이수경
김경숙
김홍렬
장경태
김현철
이유나
김기욱
허환희
이 한
조병훈
김성욱
노우정
이소영
이영화
유현주
정용길
정의준
박사옥
오상우
이시내
유현목
이민선
고은숙
권오복
송현숙
유현정
안이숙
주재성
한승훈
박찬숙
이미영
황규범
한성우
한동근
강신숙
김학균
홍연아
이준호
이공주
민영광
김민영
최진선
김승래
김종구
박설애
이 석
조희영
임종영
김용현
이혁희
이병구
오지열
최원미
엄기별
이 호
백현종
고영균
김은화
정옥란
하정상
이성기
원범재
이광세
이명구
최현기
김석용
서경찬
차준미
강광철
이미연
문현숙
박주현
백승우
김현지 / 金○○

2026년 5월 4일 월요일

박영인 / 朴永仁

  
박영인 / 朴永仁
창씨개명 : 江原 正美 / 에하라 마사미
예명 : 邦 正美 / 쿠니 마사미
(1908년 1월 2일 - 2007년 4월 4일)
일제간첩출신 친나치 무용수

일본 유학 중 관동대학살을 피해 일본에 귀화
1937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독일 국립무용대학에 유학하며, 나치 예술가이자 일제 첩보요원으로 활동
1939 나치 독일 선전부에 자원해 전선의 나치군을 위한 공연
(외국 국적자의 첫 전선 위문 공연이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
미군 정보부로부터 일제 첩보 요원으로 의심
1945 광복 후 일본 귀국
1960 미국 이주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손자 중에 미국인 코미디배우 프레드 아미센 / Fred Armisen이 있다.






출처:
https://kuni-creativedance.jp/kunimasami/

2026년 5월 1일 금요일

임종국 - 친일문학론

경성일보 / 京城日報
: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발행된 한국의 신문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통감부가 조선총독부 체제로 바뀌면서
총독부 기관지로 변경되었다.
일본어로 발행되었으므로 친일적인 성격이 강한 관제 매체였다.
사장의 임명 등 인사 및 운영을 총독부가 주관하였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을 포함한 친일파 인물들은 주로 경성일보를 구독했다는 분석이 있다.

국민문학 / 國民文學
: 전시체제기, 일본 국책 문학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 간행된 유일한 문예 잡지

국민시가 / 國民詩歌

국민신보 / 國民新報
: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자매지

녹기 / 綠旗 > 흥아문화 / 興亞文化
: 친일단체 녹기연맹 기관지
1944년 3월부터는 흥아문화로 개제되었다.

대동문화사

동도서적

동양지광 / 東洋之光
: 일제강점기 말기에 발행된 월간지
일본어로 발행되는 친일 월간지로서 내선일체를 주장하는 잡지였으며, 1939년 박희도가 사장을 맡아 창간되었다

매일신보 / 每日申報 > 每日新報 (1938년부터)
: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반일 성향의 대한매일신보와는 달리
일본인이 사장을 맡은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와 일제의 통치에 협조적인 관제 일간지였다.

문장 / 文章
: 일제강점기의 문학 잡지로, 1939년 2월에 창간되어 1941년 4월에 폐간되었다.

문학보국 / 文學報國

박문서관 / 博文書館

삼천리 / 三千里 > 대동아 / 大東亞 (개명)
: 초기는 민족적 입장을 취하였으나
1937년 이후부터 점차 친일적인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친일파·민족반역자를 등장시켜서 반민족적 잡지로 전락하였고,
끝내는 친일잡지 ≪대동아≫로 개명까지 하였다.

신시

신시대 / 新時代
: 1941년, 신시대사에서 노익형이 시사적인 내용과 문예물을 수록한 월간 잡지.
이 잡지는 1941년 1월 창간되어 1945년 2월 통권 54호로 종간되었다. 주로 시사와 문예물을 실었던 종합지로서, 기사의 내용은 친일색이 농후하였다.

인문평론 / 人文評論

조 광 / 朝 光
: 일제강점기인 1935년 10월에 창간된 월간 잡지
1940년대를 전후하여 일제의 탄압과 강요로 일문(日文)과 일제의 침략전을 지지, 찬양하는 작품·논문 등을 실어 친일잡지가 되었다

춘추 / 春秋
: 1941년, 조선춘추사에서 우수한 논문들과 문학 작품을 수록한 월간 잡지.



<친일문학론>에 등장한 친일문인 명단이다.



부록의 관계 작품 연표에 등장한 110명,

범친일 문인에 드는 사람은 160명

영광된 작가는 윤동주, 병영로, 김영랑 등 모두 15명







염상섭 / 廉想涉 - 의혹
(1897년 8월 30일 - 1963년 3월 14일)
염창섭



1. 김동인
2. 김동환
3. 김문집
4. 김사량
5. 김소운
6. 김안서
7. 김용제
8. 김종한
9. 김팔봉
10. 노천명
11. 모윤숙
12. 박영희
13. 백철
14. 유진오
15. 이광수
16. 이무영
17. 이석훈
18. 이효석
19. 장혁주
20. 정비석
21. 정인섭
22. 정인택
23. 조용만
24. 주요한
25. 채만식
26. 최남선
27. 최재서
28. 최정희

29. 신인 작가와 기타. 20명
곽종원

김경린 / 金璟麟
(1918년 4월 24일 ~ 2006년 3월 30일)

김경희 / 金景熹

김기수 / 金圻洙


김남천 / 金南天
(1911년 3월 16일 - 광복월북, 1953년 8월 6일)
일제 말기인 1943년에는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報國會)의 평의원이 되어
『국민문학』·『조광』 등 황도문학을 선양하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김동림 / 金東林

김본종희 / 金本宗熙

김사영

조연현




출처: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01101

2026년 4월 30일 목요일

국민 인민 단어

유진오는 대한민국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된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자신의 회고록에서 황동준, 윤길중, 정윤환 등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고 기록하였다. 초안의 조문 끝에는 독일 바이마르 헌법, 미국, 오스트리아, 일본(대일본제국헌법과 일본국헌법), 중화민국, 필리핀, 프랑스, 프로이센 헌법 등을 참조했다고 기술하였다.[11] 이 초안에서 국민을 '인민'으로 표현했다. 초안 작성자인 그가 국민 대신 인민이란 어휘를 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12] 국민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강하여 국가우월적 느낌을 준다. 반면에 인민국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표현한다. 유진오는 국가를 구성하는 자유인으로서의 개인을 표시하는데 국민보다 인민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13]

이에 국회의원이던 윤치영대한민국 헌법 초안의 인민이라는 용어를 문제삼아 유진오를 통박하였다. 그는 "인민이란 말은 공산당의 용어인데 그러한 말을 쓰려고 하느냐. 그런 말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유진오)의 사상이 의심스럽다.[13]"고 흥분했다.[13] 유진오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항의했고 윤치영은 틀린말 하지 않았다며 맞받아쳤다. 국회에서는 논쟁이 벌어졌고, 윤치영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국회의원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인민이라는 용어는 대한제국의 절대군주 시절에도 사용되던 용어였다.[13] 후에 유진오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당에 빼앗겼다며 한탄하였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C%A7%84%EC%98%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