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토요일

이왕가(李王家)

이왕가(李王家)는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조선왕실은 한일병합 이후에도 일본한테 왕공족 작위 받고
놀러다니면서 삶.


일본 본토 귀족 < 이왕가 < 천황가 순으로 높은 신분이었고
이왕가 대부분이 일본제국군에서 근무도 했음.




해방 후 한반도에 공화정이 들어선 뒤, 공화국 정부나 지식인 계층에서 사상에 따라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할 가치가 있는 군인이나 인텔리 세력보다도 더 증오받았던 것은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던 조선 왕공족이었다. 봉건주의를 혐오한 북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이들의 입국조차 금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교체되며 '역사적 정통성'과 '민족문화의 자부심' 같은 맥락에서 구 조선 왕실에 대한 반감이 희석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궁>과 같은 가상 황실 드라마가 방영되며 황실 복원에 대한 열망도 고개를 들었을 정도였다. 역사연구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할 당시, 귀족 작위를 받은 많은 조선 및 대한제국의 인사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에 오른 데 반해 왕공족은 친일 논란에서 큰 주목을 받지 않았고 도의적으로 등재를 피해가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 한국인들 중 일본군 장교 출신 상당수가 친일파로 분류되었으므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군에 복무하였던 왕공족 또한 명단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논의 끝에 망국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나, 이들은 일본이 별다른 마찰 없이 대한제국을 편입하기 쉽게 하려고 왕공족 작위를 만들어 그들을 대우하였지 '협력에 대한 대가'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초대 운현궁 이희과 2대 운현궁 이준과 같이 친일 행위자 명단에 오른 이와 2대 사동궁 이건공처럼 아예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람도 있지만, 초대 사동궁 이강처럼 독립 운동의 의사를 보이거나 혹은 그의 아들 3대 운현궁 이우처럼 반일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 인물도 있기 때문에 모든 왕공족에게 친일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자들은 왕공족에 있던 이들은 왕공족에 들어갔다는 이유가 아닌, 실질적인 친일 행적이 있는지 여부로 친일파인가를 판단했다. 다만, 같은 식의 역사학적 관점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있어 동일하게 적용되었는지는 비교하기 쉽지 않다. (친일인명사전 문서의 논란 문단 참조)

영친왕이건은 1947년 신적강하 전까지 왕 및 공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우는 전쟁 중 원폭으로 사망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부터 쭉 조선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영친왕과 이우는 워낙 어릴 때 일본에 간지라 인질에 가깝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흥친왕 이재면 / 興親王 李載冕, 완흥군 / 完興君
(1845년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
한일합병조약 체결시 황족대표
은사공채 하사



영선군 이준용 / 永宣君 李埈鎔
(1870년 7월 23일(음력 6월 25일) ~ 1917년 3월 22일(음력 2월 29일))
은사공채 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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