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0일 토요일

◈남조선 통일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열사자료(1)


조선인민무력부 534군부대, 작성일자 1980.8.1(출처=김계철 외 16명, ‘북한과 한‧미‧일 정보기관의 기록물로 본 광주사태’, 새동아사, 2020, pp. 82-84)

번호

이름

태어난 곳

생년월일

입대년도

전사한

년월일

군사칭호

1

홍성표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공덕동 4반

1950.1.8

1967.7.26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2

김석준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송평동 2반

1951.2.6

1968.7.30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3

한창준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 희양(어항)동 3반

1948.12.4

1965.9.30

1980.6.19

조선인민군 소좌

4

오부진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청암동 5반

1950.5.2

1967.9.17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5

김운선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구역 역전동 6반

1949.8.10

1966.7.5

1980.6.19

조선인민군

대위

6

김웅수

함경북도 청진시

청평구역 숭암동15반

1949.9.9

1966.8.14

1980.6.19

조선인민군

대위

7

김국식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송평동 7반

1948.11.6

1965.9.17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8

김한수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구역 역전동 12 반

1947.11.3

1964.8.9

1980.6.19

조선인민군

상좌

9

서대식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사구동 3반

1950.6.6

1967.7.4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0

우준선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북어동 9반

1950.5.6

1967.8.11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1

조영규

함경북도 청진시

부령구역 송곡동 9반

1951.5.8

1968.8.7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12

리진혁

함경북도 청진시

부령구역 부령동 14반

1949.8.3

1966.7.21

1980.6.19

조선인민군

소좌

13

염종식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구역 역전동 11반

1950.10.

18

1967.7.6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4

유해유

함경북도 온성군

풍계리 1반

1952.6.29

1969.7.9

1980.6.19

조선인민군

상사

15

김종돈

함경북도 온성군

동포리 8반

1953.3.5

1970.7.11

1980.6.19

조선인민군

상사

16

천수만

함경북도 온성군

세천리 3반

1950.7.7

1967.7.1

1980.6.19

17

유리국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 광덕동 4반

1951.7.8

1968.9.13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18

김귀옥

함경북도 온성군

풍천리 12반

1948.3.6

1965.8.7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19

서진남

함경북도 온성군

학포리 3반

1947.2.8

1964.8.13

1980.6.19

조선인민군

상좌

20

김창록

함경북도 온성군

읍 23반

1950.10.

18

1967.9.8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21

김영석

함경북도 온성군

읍 23반

1952.4.26

1969.7.9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22

김수전

함경북도 온성군

상성리 2반

1948.9.9

1965.7.13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23

김용성

함경북도 새별군

농포리 1반

1947.5.6

1964.9.8

1980.6.19

조선인민군

상좌

24

전순돌

함경북도 새별군

연산리 9반

1950.10.6

1967.7.7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25

리계찬

함경북도 새별군

용봉리 7반

1948.12.

18

1965.9.24

1980.6.19

조선인민군

상좌

26

림한석

함경북도 새별군

봉산리 8반

1949.11.5

1966.7.27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27

김진우

함경북도 새별군

연산리 4반

1952.3.12

1969.8.23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28

박원용

함경북도 은덕군

오봉리 5반

1951.11.

12

1968.7.16

1980.6.19

조선인민군

상사

29

황송열

함경북도 은덕군

오봉리 4반

1950.8.9

1967.9.13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30

김동철

함경북도 은덕군

회암리 5반

1947.3.15

1964.9.24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31

리진섭

함경북도 은덕군

오봉리 2반

1949.11.

16

1966.9.3

1980.6.19

조선인민군

소좌

32

강원철

함경북도 은덕군

읍 22반

1948.10.1

1965.8.14

1980.6.19

조선인민군

상좌

(번호 33-144는 생략)

번호

이름

태어난 곳

생년월일

입대년도

전사한

년월일

군사칭호

145

김인도

함경북도 선봉군

홍의리 5반

1950.3.11

1967.7.22

1980.6.19

조선인민군

상위

146

김옥린

함경북도 선봉군

사하리 16반

1949.4.18

1966.8.13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147

김동준

함경북도 선봉군

백하리 32반

1951.9.7

1968.9.4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48

김영화

함경북도 라진시

사구리 81반

1952.7.14

1970.9.1

1980.6.19

조선인민군

상사

149

윤성화

함경북도 라진시

북어리 56반

1953.6.3

1971.9.7

1980.6.19

조선인민군

중사

150

림영훈

함경북도 라진시

북어리 13반

1947.1.9

1966.7.29

1980.6.19

조선인민군

중좌

151

최중선

함경북도 라진시

무장리 30반

1950.9.17

1967.8.3

1980.6.19

조선인민군

상위

152

한승택

함경북도 회령군 망향리 31반

1951.8.4

1968.7.12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53

차준욱

함경북도 회령군 유성리 14반

1952.6.28

1970.7.23

1980.6.19

조선인민군

상사

154

김병천

함경북도 회령군

궁삼구 88반

1951.6.8

1968.8.13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155

김용옥

함경북도 온성군

읍 47반

1952.2.28

1968.8.24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156

김두천

함경북도 온성군

읍 3반

1951.4.24

1968.7.23

1980.6.19

조선인민군

중위

157

박은학

함경북도 새별군

녹기아리 21반

1951.3.24

1968.7.12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158

조영학

함경북도 새별군

읍 64반

1951.10.

18

1968.8.3

1980.6.19

조선인민군

소위



탈북자들이 입수했다는 '광주5·18개입 북한군 전사자 354명 명단'

탈북자들이 입수했다는 '광주5·18개입 북한군  전사자 354명 명단' : 이 가운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은 청진의 추모비에 적힌 사망자 명단과 정확히 일치한다.

편집자주= 광주5·18의 헌법전문 수록이 담긴 개헌안을 더불어민주당 등이 6·3선거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가운데 '자유의 투사' 김계철 등 17명이 저술한 '북한과 한·미·일 정보기관의 기록물로 본 광주사태' (새동아사, 2020, 총 170쪽)에 담긴 내용(북한군 개입)을 아래와 같이 발췌, 소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 제3장 북한 특수부대 남파활동 및 전사자들'에서 광주 5·18당시 남한에 침투한 북한군은 630부대로 불리는 평안남도 덕천 소재 폭풍군단 소속 우뢰 3여단(북한에선 '우레'를 '우뢰'로 표기), 함경북도 소재 534군부대, 함경남도 소재 108군 부대, 강원도 소재 806군 부대원을 포함 약 600명이며, 이 가운데 전사자는 49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490명중 475명은 광주 근교에 암매장됐고, 11명은 매장 장소 미상이며, 4명은 북으로 귀환 중 사망하거나 행적이 불분명하다고 적고있다. 암매장 부분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때 발족한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2024년 6월 종합조사보고서를 통해 '규명 불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책은 전사자 490명가운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함경북도 534군부대 보위부 보관), 108군부대 전사자 112명(함경남도 108군부대 보위부 보관), 806군부대 전사자 84명(강원도 806군부대 보위부 보관) 등 354명의 명단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이와 함께 일부 '무장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군이 1980년 4월 하순부터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진압된 5월 27일 까지의 상황을 일자별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전사자 490명 중 폭풍군단 사망자로 추정되는 136명에 대해서는 명단을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각 보위부가 보관중인 명단에는 ‘남조선 통일전선을 위한 투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민군 열사자료’란 제목이 붙어있다. 제목 아래 왼쪽에 <대외비 한함>이란 글씨와 함께 작성 일자를 뜻하는 1980년 8월 1일이 적혀있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國章)이 찍혀있다.



이 책은 전사자의 성명·출신지·입대년도·전사일자·소속부대명·계급등을 공개하고 있는데 전사자의 생년월일은 대부분 1950~1951년, 입대년도는 대부분 1967~1970년이다. 그리고 계급이 중·상사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위·중위·상위 등 초급 장교로 돼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 354명의 사망일이 모두 ‘5·18 광주사태’(1980면 5월18-27일) 직후인 1980년 6월 19일로 일괄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당시 북한에서 군인의 대량 전사(戰死)를 야기할 수 있는 전쟁이나 군사정변, 인민봉기 같은 것이 결코 없었는데 하루에 354명의 군인 사망자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북한의 ‘5·18 개입 작전’이 최종적으로 한달 뒤인 6월 19일 종결됐으며, 또한 이들이 남한에서 '전사'해 시체가 수습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이책은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 청진역 북쪽 약 800m 지점, 청진공업대학 부근 낙타산의 해발 70m 고지(북위 41도 47분 53초, 동경 129도 47분 59초)에는 함경북도 소재 조선인민군 특수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의 묘비와 무덤이 설치돼 있었으나 지금은 묘비는 철거돼 없다고 당시 사진(촬영 시점 2011년 11월)까지 공개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묘역에는 1980년 광주-전남 일원에서 무장반란을 선동하며 작전을 수행하다 사망한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의 무덤 2개와 추모비가 설치됐다. 추모비 뒷면 양쪽엔 가묘 2개(시체가 회수되지않아 부대와 집에 남아있는 유품 등을 넣어 만든 무덤이라한다. 전사자들은 남녀 합장을 하지않는다는 관례에 따라 남자묘와 여자묘 각 1개)가 설치됐다. 그러나 2012년 9월 27일 서울에서 탈북자와 북한 인권운동가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광주5.18’에 개입한 북한군 전사자 명단이 적힌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비)’ 사진을 공개하고 전사자 관리 부대를 발표하자 다음날인 9월 28일 북한의 보위부와 대남공작부서에서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묘비를 철거하기로 결정, 2014년 여름 철거해 모처에 보관중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군의 ‘광주5·18’ 개입을 부정하는 5·18진상규명조사위 측에서는 청진의 이 추모비가 6·25전쟁 전사자의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시간적, 역사적으로 전혀 맞지않은 주장이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발효로 끝났기 때문에 이들이 6·25때 18-20세로 전사했다고하면 생년월일은 대체로 일제 식민통치시기인 1930~1932년, 입대연도는 늦어도 1950년 6월 25일 전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북한인민무력부와 보위부가 보관중인 문서에는 전사자들의 출생년도가 1950~1951년, 입대년도는 대부분 1967~1970년이어서 5·18진상규명 조사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 되고만다.



또한 전사자 사망일자가 6·25 당시가 아닌 일괄적으로 ‘광주5·18’ 직후인 1980년 6월 19일, 명단 작성일도 1980년 8월 1일자란 점도 이들이 6·25전쟁과는 무관하다는 걸 말해 준다.



이책은 그러면서 이 명단의 구체적인 출처가 어디인지, 획득방법에 관한 질문을 금지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즉 명단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알려고 노력하지도, 묻지도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다만 보조자료로 북한에서 발행된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조국통일사, 1982.3.20), '광주의 분노'(조선로동당출판사, 1985.5.16), 일본 자료로 '찢어진 깃폭'(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 1980.6)등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600여명이 일시에 침투한 것이 아니라 남한이 소위 1980년 '서을의 봄'을 맞아 학생 시위 등으로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 야간을 이용, 여러 차례 나뉘어 대부분 해상으로 침투, 무둥산 등 산속과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작은 도서를 은거지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폭풍군단은 1968년 창설된 북한의 정예 특수작전군 부대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도 파견된 11군단 소속으로, '번개'로 불리는 경보병여단, '우뢰'로 불리는 항공육전단, '벼락'으로 불리는 저격여단 등 10개 여단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병력 규모는 5만-6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적지 종심 작전'에 특화된 이 부대는 현재는 자폭 드론 등 신형 전투 장비를 운용 하고 있다.



이 책은 서문에서 한·미·일 정보기관의 자료와 5·18 당시 남파된 북한군의 진술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당시 남파됐다가 살아서 북한에 돌아간 인민무력부 소속 문영진(폭풍군단 우뢰 3여단 5대대) 증언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저자가 직접 광주 현장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이 책의 내용을 갖고 소수 악인의 행위를 빌미삼아 선량한 전남도민을 비난하는 행위를 삼가기 바라며, 이 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그러면서 광주사태는 북한군 남파, 내란, 민주체제하의 정치적 사건 등 복합적 성격을 띤 것임을 보여준다면서 따라서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복합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서옥식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별도첨부




▲(위)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 청진역 북쪽 약 800m 지점, 청진공업대학 부근 낙타산의 해발 70m 고지(북위 41도 47분 53초, 동경 129도 47분 59초)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인민군 특수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의 묘비와 무덤.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 묘역에는 1980년 광주-전남 일원에서 무장반란을 선동하며 작전을 수행하다 사망한 조선인민군 특수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의 무덤 2개와 추모비가 설치돼있다. 추모비 뒷면 양쪽엔 가묘 2개(시체가 회수되지않아 부대와 집에 남아있는 유품 등을 넣어 만든 무덤가 이라한다. 전사자들은 남녀 합장을 하지않는다는 관례에 따라 남자묘와 여자묘 각 1개)가 보인다. 그러나 2012년 9월 27일 한국에서 탈북자와 북한 인권운동가들에 의해 ‘광주5.18’에 ‘참전’한 북한군 전사자 명단이 적힌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묘(비)’ 사진이 공개되고 전사자 관리 부대가 발표되자 다음날인 9월 28일 북한의 보위부와 대남공작부서에서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묘비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묘비는 2014년 여름 철거해 모처에 보관중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래)추모비 뒷면 사진(아래): 2011년 11월에 촬영된 사진으로 여기 적힌 158명의 명단은 북한 인민무력부가 작성한 534군 부대 전사자 명단 및 전투 기록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상단 좌측 세로 셋째 줄 ‘홍성표’에서 읽기 시작해 상단 우측 ‘김석준’ 등으로 가서 마지막에 하단 우측 ‘조영학’에서 끝난다(아래 명단 참조). 전사자 명단은 펜글씨로 1980년 8월 1일자로 작성돼 보관돼 온 것을 1990년대 중반 전산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한다.



▲북한 보위부와 대남공작 기관은 2012년 9월 28일 긴급회의를 열어 ‘인민군 영웅들의 렬사비’를 은폐하기로 결정하고 자료 유출자를 처벌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철거되기 직전 주차장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정문 안쪽으로 묘비가 목격된다. 계단 좌우에는 전쟁 부조물이 있다






<추모비에 새겨진 북한 특수군


534군부대 전사자 158명 명단>


北인민무력부와 보위부가 관리하는 명단과 정확히 인적사항이 일치한다





홍성표, 김석준, 한창준, 오부진, 김운선, 김응수, 김국식, 김한수, 서대석, 우준선, 조영규, 리진혁, 염종식, 유해유, 김종돈, 천수만, 유리국, 김귀옥, 서진남, 김창록, 김영석, 김수전, 김용성, 전순돌, 리계찬, 림한석, 김진우, 박원용, 황송열, 김동철, 리진섭, 강원철, 최귀한, 리창용, 손원백, 현택룡, 박경화, 김수근, 김인준, 방동환, 전성규, 남창섭, 강일권, 리봉섭, 주창동, 김인현, 윤장우, 리정부, 김은태, 최은신, 김태환, 김명규, 리동근, 김승미, 리동철, 리양수, 허명신, 염철남, 영홍식, 리정환, 최철순, 염근원, 김학준, 조기림, 리승봉,림용현, 주장실, 최진숙, 백창덕, 김두표, 허죽순, 최윤일, 김길만, 김일춘, 리신전, 김귀삼, 리손직, 박려원, 리창근, 리광주, 박경준, 김한옥, 김영학, 리인걸, 림대식, 박재준, 리학권, 염인순, 홍인준, 최리순, 염운신, 리광춘, 라하권, 리종문, 박공봉, 림종문, 노훈문, 황명환, 김두관, 임원표, 배원호, 최영도, 서용규, 김귀성, 최재복, 김원형, 김종환, 최봉준, 최규학, 김상혁, 김기남, 현원식, 김옥현, 유풍준, 김영식, 김황로, 김화룡, 리순희, 김종순, 백기준, 김길선, 김우철, 박일진, 리은지, 김종린, 김장복, 최갑진, 박두길, 리도화, 김현룡, 안경찬, 최도진, 천지춘, 김영호, 리일화, 전기천, 마진선, 홍종묵, 신안석, 김허준, 김월빈, 백순옥, 리춘식, 류길산, 김인도, 김옥린, 김동준, 김영화, 윤성화, 림영훈, 최중선, 한승택, 차준욱, 김병천, 김영옥, 김두천, 박은학, 조영학







★첨기 사항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2024년 6월 17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보기관장 재직 시절 ‘비밀공작’을 통해 북한의 광주5·18 개입을 우리 정부가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에 대해 전직 정보기관장이 확인 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 전부장은 1993년 국방부 장관에 이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안기부장을 지냈다.



또 김경재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는 새정치국민회의 의원시절인 1999년 12월 6~14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밀사’자격으로 로 방북, 북한 애국열사릉에 '광주5·18' 개입 북한 특수요원들의 묘역이 조성돼 있음을 목격하고 북측으로부터 설명들었다고 밝혔다.



김 전총재는 2023년 5월 원로 언론인들의 모임인 대한언론인회가 발행하는 온·오프라인 매체 '대한언론' 인터뷰에서 애국열사릉에서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광주5·18에 개입했다는 북한 특수요원 가묘(묘비) 10여기를 목격했다면서 "그동안 광주 5·18의 민감성 때문에 가만히 지내다 24년만에 목격 사실 처음으로 밝힌다” 고 했다



김 전 총재는 자신을 안내한 조선노동당 간부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평양시 형제산 구역 신미동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을 방문, 이들로부터 5·18개입 북한 요원들의 묘역이 가묘로 조성돼 있다는 설명과 함께 10개 내외(9-11개)의 묘비가 있음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애국열사릉이란 남로당 고위인사 등 공산주의 활동가, 대남공작원 등 남파간첩, 남한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사람 100여명 등 약 800명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곳엔 김일성이 가장 신뢰했으며 김구 선생을 설득해 金을 만나도록 주선한 인물로 알려진 거물간첩 성시백, 제주인민해방군 초대사령관으로 제주4·3공산폭동을 주도한 김달삼, 지리산 빨치산대장으로 활동한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남로당 서울총책 김삼룡, 거물 대남공작원으로 통일혁명당 사건을 주도한 김종태, 조선인민군 문화부 소속 6·25전쟁 종군기자인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월북한 외무장관 출신 최덕신 등의 묘가 가묘 또는 실묘 형태로 조성돼 있다. 4·3 공산폭동을 주도한 김달삼, 지리산 빨치산대장으로 활동한 남부군사령관 이현상, 남로당 서울총책 김삼룡, 거물 대남공작원으로 통일혁명당 사건을 주도한 김종태, 조선인민군 문화부 소속 6‧25전쟁 종군기자인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월북한 외무장관 출신 최덕신 등의 묘가 가묘 또는 실묘 형태로 조성돼 있다. 몽양 여운형의 가묘도 조성돼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http://daehansinbo.com/bbs/board.php?bo_table=46&wr_id=41063&device=pc


2026년 5월 24일 일요일

친북인명사전

 

  • 1.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미화 찬양한 자
  • 2.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찬양 선전한 자
  • 3.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대남 정책 및 주장을 옹호, 지지한 자
  • 4.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파괴를 선동한 자
  • 5. 민중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실현을 선전, 선동한 자
  • 6. 계급투쟁에 의한 민중 독재, 노동자 권력 수립을 주장한 자
  • 7. 의회민주주의와 국가사법체계를 파괴 선동한 자
현재까지 1차 명단만을 발표하고 무기한 연기에 빠졌다.
재야
강순정(연방통추 공동의장) 권오헌(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명예의장) 김광일(다함께 운영위원) 김승국(평화만들기 대표) 김종일(평통사 사무처장) 나창순(범민련 명예의장) 노중선(4월혁명회 상임대표) 문성현(전 민주노동당 대표) 민경우(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2] 박석률(민자통 의장) 박석운(노동인권회관, 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박세길(새사연 연구위원) 배은심(전 반미여성회장)[3]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송갑석(전대협 동우회장)[4] 오종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윤원탁(실천연대 공동대표) 이경원(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이규재(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이승구(이시우)(사진작가) 이승환(민화협 집행위원장·전 한청 의장) 이재춘(활동가) 이재현(현장실천연대 의장) 임동규(통일광장 대표)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전상봉(공동성강화를 위한 서울시민연대 대표) 정광훈(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전 전농 의장) 정대연(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조덕원(21코리아 대표) 최열(환경재단 대표) 최일붕(다함께 대표) 표명렬(평화재향군인회 회장) 한상렬(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목사) 한충목(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허영구(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학계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강정구(동국대 교수) 김근식(경남대 교수)[5] 김세균(서울대 교수) 김수행(전 서울대 교수)[6] 서중석(성균관대 교수) 손호철(서강대 교수) 신영복[7](성공회대 석좌교수) 안병욱(카톨릭대 교수·전 진실화해과거사위원장) 오세철(연세대 명예교수) 리영희(전 한양대 교수) 이장희(외국어대 교수) 이철기(동국대 교수)[8] 장상환(경상대 교수) 정해구(성공회대 교수) 조국(서울대 교수)[9]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종교
김민웅[10](목사·성공회대 교수) 김상근(목사·615 공동위 남측위원장) 문규현(신부·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문정현(신부·통일평화재단 이사장) 법타(스님·평화불교협의회 의장)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대표) 진관(스님·불교인권위원장) 함세웅(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홍근수(목사·평통사 공동대표) 효림(스님·실천승가회 명예대표)
문화, 언론
김경호(국민일보 부장·전 기자협회장) 박종화(음악가) 백낙청(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백무산(시인) 신준영(남북역사학자협의회 사무국장·전 지 기자) 안영민(민족21 편집국장) 오연호(오마이뉴스 대표) 윤민석(가수) 이창기(자주민보 대표) 장명국(내일신문 사장) 정일용(연합뉴스 기자·전 기자협회장) 조정래(소설가) 황석영(소설가)[11]
법조계
김승교(변호사·실천연대 상임대표) 박원순(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임종인(변호사·전 국회의원)
의료
이상이(제주대 의대 교수)[12] 권정기(의사·전 진보의련 의장)
정치권·관계
강기갑(국회의원·민노당 대표) 권영길(국회의원) 김근태(민주당 상임고문·전 국회의원) 김창현(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 노회찬(진보신당 대표·전 국회의원) 손장래(민족21 고문·전 안기부 차장) 오영식(전 국회의원) 우상호(민주당 대변인) 이인영(전 국회의원) 이재정(전 통일부 장관)[13]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임종석(전 국회의원) 최규식(국회의원) 한상범(전 의문사진상규명위 위원장)[14]
해외
김명철(조미평화센터 소장·일본) 김현환(재미동포전국연합 부의장·미국) 노길남(민족통신 대표·미국) 박용(범민련 공동사무국 사무부총장·일본) 송두율(독일뮌스터대 강사·독일)

2.3. 선정 과정[편집]

당초

친일인명사전 - 미술 (보류·삭제)

   
송정훈 / 宋政勳 - 보류
(1914 - ?)
단광회 회원
<조선징병제실시> 공동 제작
광복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될 때 친일 활동의 이력 논란으로  제외
1947 앙데팡당전을 조직



  
이봉상 / 李鳳商
(1916년 7월 27일 - 1970년 8월 4일)
결전미술전람회 다수 출품 및 입선
1952 부산에서 기조전(其潮展) 개최
1956 창작미술협회전 설립
19__ 서라벌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학) 미술과장
1958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교학과장 및 회화과장
19__ 미술평론가
2004 "공인 받지 않은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봉상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로 지정



  
정현웅 / 鄭玄雄 - 삭제
(1910년 9월 20일 - 1976년 7월 30일)
친일잡지 표지화·삽화
광복후, 조선미술건설본부 서기장, 조선아동문화협회 결성, 고려문화사 편집위원
__.11.1948 조선미술동맹(좌익) 위원
__.01.1950 국민보도연맹 주최 제1회 국민예술제전에서 메시지 낭독 (전향)
__.09.1950 6·25전쟁 때 남조선미술가동맹 서기장 > 퇴각하는 북한군을 따라 월북
__.__.19__ 물질문화유물보존위원회의 제작부장
__.__.19__ 조선미술가동맹 출판화분과위원장
__.__.19__ 미술제작소 회화부장
친일 화가 논란이 있었으나 직업 삽화가로서 생계를 위한 행위였다는 점을 인정받아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삭제






출처:
https://m.mbn.co.kr/news/4678261
https://cafe.daum.net/woorinart/6VJ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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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3일 토요일

552만명 대사면…황석영·서경원씨등 2,304명 석방

 석방 대상자중엔 밀입북 사건으로 복역중인 서경원 (徐敬元) 전 의원.소설가 황석영 (黃晳暎) 씨.신인영 (辛仁永.68) 씨 등 미전향 장기수 6명을 비롯한 공안사범 74명, 95년 한총련 연세대 시위사태 관련자 등 학원사범 40명이 포함돼 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3617722

2026년 5월 17일 일요일

경기동부연합 247명




이석기 / 李石基
임수경 / 林秀卿
이정희 / 李正姬
김재연 / 金在姸
김태년 / 金太年
이의엽 / 李義燁
이양수
양경수
오병윤 / 吳秉潤
김미희 / 金美希
박원순 / 朴元淳
손 솔 / 孫 率
한상렬 / 韓相烈
노수희 / 盧秀熙
편재승 / 片在承
윤원석
우위영
최호연
홍희진 / 洪憙眞
윤용배
정형주 / 鄭亨柱
김삼석
백승우 01
이승헌
백승우석기 / 李石基
임수경 / 林秀卿
이정희 / 李正姬
김재연 / 金在姸
김태년 / 金太年
이의엽 / 李義燁
이양수
양경수
오병윤 / 吳秉潤
김미희 / 金美希
박원순 / 朴元淳
손 솔 / 孫 率
한상렬 / 韓相烈
노수희 / 盧秀熙
편재승 / 片在承
윤원석
우위영
최호연
홍희진 / 洪憙眞
윤용배
정형주 / 鄭亨柱
김삼석
백승우 01
이승헌
백승우 02
안동섭
강성희 / 姜聖熙
한용진
신창현 / 申昌眩
홍성규 / 洪性奎
김기창
김영욱
김제남 / 金霽南
윤희숙 / 尹凞淑
김선동 / 金先東
장원섭 / 張元燮
정태흥 / 鄭泰興
이기수
이은정
김영섭
황윤주
김수철
손소희
신은미
신은숙
김율리
윤계향
김기용
정경옥
신태석
안진모
전현욱
노은희
이유승
남연호
홍은숙
김은승
강무영
이성종
주재택
정순임
김태훈
진창욱
오병일
박병주
황순임
김미경
김묘순
전지현
김영호
문재성
한영수
공부종
장석철
신욱희
문영복
김현기
소연영
곽규식
박상덕
김은희
김병조
김광종
김진여
김예정
김창희
김주희
김광련
천상덕
임택성
김정화
신진석
이종민
이수현
김판근
박순정
오영선
이관문
박미경
민춘식
김성준
김형준
고광혁
강정아
고재명
조재훈
김승오
황정주
안미현
박선주
김수경
박순정
강성일
김기범
서춘자
김대원
윤혜숙
김숙경
이영주
안광석
이봉열
최도남
한명진
김성기
최영신
이상훈
김성아
우혜영
김영남
김종연
안문숙
김현옥
한상훈
박지순
김대원
최지현
김지선
박우영
이광일
김경례
이영국
윤보희
성재원
김경모
최성영
최수현
최성은
이영복
성민제
김성수
한유진
김윤기
김찬천
김성택
김지연
나성현
정하준
류재근
민흥식
서은주
송광륜
엄병철
유정희
이연화
이향지
유은철
김지숙
라병득
권영환
한만성
서애란
김용욱
안광희
허근영
이기원
백승철
김영욱
김정록
황성현
김영범
박준마
조양원
엄경희
이명주
김민영
정남득
이명주
장은정
이상덕
심동섭
권혁찬
강영란
윤태봉
홍성호
김홍숙
윤태영
이상근
유수정
송금숙
김선동
정영섭
심문희
이경희
박미향
김봉용
박세화
조기천
이영일
황성효
김장미
전현숙
이승복
정수윤
송정현
나주철
이영춘
박기남
강명용
김연주
정해혁
최동석
오혜원
전권희
김먼석
박윤숙
조현경
홍성규
강은희
고영국
신현수
이진호
이현주
이정미
김경순
최종원
김수영
김기인
신천호
정영윤
이권기
류채규
오동환
김옥균
백선민
김양현
이현주
최연철
신미정
서기욱
김선정
강연희
이성윤
오재석
박경우
서기욱
박원권
이호진
김정희
원종수
김진성
최진미
김배곤
이송범
박준영
김은정
양은미
김기욱
신용욱
정은영
조민오
황찬명
김동욱
이수경
김경숙
김홍렬
장경태
김현철
이유나
김기욱
허환희
이 한
조병훈
김성욱
노우정
이소영
이영화
유현주
정용길
정의준
박사옥
오상우
이시내
유현목
이민선
고은숙
권오복
송현숙
유현정
안이숙
주재성
한승훈
박찬숙
이미영
황규범
한성우
한동근
강신숙
김학균
홍연아
이준호
이공주
민영광
김민영
최진선
김승래
김종구
박설애
이 석
조희영
임종영
김용현
이혁희
이병구
오지열
최원미
엄기별
이 호
백현종
고영균
김은화
정옥란
하정상
이성기
원범재
이광세
이명구
최현기
김석용
서경찬
차준미
강광철
이미연
문현숙
박주현
백승우
김현지 / 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