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절(紀元節)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기원절로 불리다가 이후부터는 건국기념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제는 기원 2600년인 1940년에는 당시 도쿄와 식민지 등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치렀는데, 괴뢰국인 만주국의 황제 부의가 도쿄에 초대되기도 했다.
특기할 점은 일제는 1940년도 기원절을 '기념'해서 조선 전역에 창씨개명제를 실시했다. 창씨개명의 근거 법률은 제령 제19호 '조선민사령 중 개정건'과 제령 제20호 '조선인의 씨명(氏名)에 관한 건'이다.
일제가 '기원절'이라는 특정 기념일을 기해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추진했다는 점은 황국신민화 정책의 상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일제가 기원(紀元) 2600년인 1940년 2월 11일 기원절 행사를 도쿄와 경성(현 서울)에서 성대하게 개최하면서 이 행사에 초대된 인사들의 면면을 기록한 인명록으로, 정식 명칭은 <<기원이천육백년축전(祝典)기념 광영록(光榮錄)>>이다.
공주갑부이자 친일파로 유명한 김갑순(金甲淳)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신문사에서 1941년 10월에 간행한 이 <광영록>은 1백여 장에 이르는 기원절 행사 관련사진과 함께 <부록>으로 기념식과 봉축행사에 초대된 초대자들의 명단, 사진, 약력 등을 수록하였다.
전체 수록자는 모두 1100여 명으로, 이 가운데는 조선인 300여명도 포함돼 있다. 이 행사에 초대된 조선인들은 총독부 산하 각 기관의 고관대작을 비롯해 사회 지도급 인사, 자영업자, 면장, 하급 경찰간부, 그리고 지역유지 등 각계 인사가 망라돼 있다.
일제가 이 행사에 초대된 것을 두고 '자자손손 가문의 영광'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봐 이들은 총독부로부터 조선통치에 공로가 인정됐거나 또는 충성심이 검증된 인사들로, 소위 '충량한 황국신민'으로 평가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김성수 - 동아일보 전 사주
김활란 - 이화여대 전 총장
최준집(창씨명 丸山隆準, 강릉조선주조 조합장, 중추원 참의)
자작 이규원(조선귀족회 이사, 대륙고무공업 사장)
백윤하(경성복심법원 판사)
이상기(경성복심법원 판사)
김영환(대구복심법원 판사)
변호사 박천일(신의주 부회의원)
조선총독부 편수관 출신으로 조선사편수회에서 다시 편수관으로 근무했던 신필호
경찰관 출신으로 충남도지사, <매일신보> 사장을 지낸 이성근
해방후 반민특위 습격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한 최령(崔鈴, 나중에 崔燕으로 개명함)
노덕술
광산거부 출신으로 일제하 수 차례 기부금과 비행기 등 전쟁물자를 헌납한 최창식이 눈에 띈다. 그는 해방후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저택(현 경교장)을 헌납하는 교활한 태도를 보인 자이기도 하다.
광산거부 출신으로 일제하 수 차례 기부금과 비행기 등 전쟁물자를 헌납한 최창식이 눈에 띈다. 그는 해방후 귀국한 백범 김구 선생에게 자신의 저택(현 경교장)을 헌납하는 교활한 태도를 보인 자이기도 하다.
화신백화점 사장 출신으로 해방후 반민특위 '검거 제1호'인 박흥식
김활란 이화여전 교장
김성수(전 동아일보 사주) 보성전문 교장
송두한 범어사 주지
이종욱 월정사 주지
안본향덕(본명 미상) 마곡사 주지
김석진 조선야소교경남장로회 부산진 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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