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토요일

부정선거 의혹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익명으로 별도의 휴대전화를 개통해 정치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주 임무로 하는 선관위의 실무 총책임자가 선거 관리의 대상인 정치인들과 비선(祕線)으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세컨드폰으로 정치인과 소통 논란…데이터 삭제 후 반납








양정철
중국 공산당 '당교'와 정책협약 맺겠다



조해주
문재앙 캠프 공명선거특보 출신
전자투표기 들여온사람



고한석



김민석

브누아 케네데 / Benoît Quennedey

브누아 케네데 / Benoît Quennedey
(1976 ~)

2003 프랑스 상원 행정관 임명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북한과 프랑스의 교류를 진착하고 비공식적인 외교 창구 역할도 겸하는 Association d'amitié franco-Coree의 회장을 겸하였다.

2018년 북한에 기밀을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2021년 무죄로 판결되었다.

2022년 프랑스 상원에 복직하였지만 2023년 프랑스 상원은 그가 북한의 독재 정권을 옹호하고 그와 접촉을 유지한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징계위원회를 개최한 후 그를 해임하였다.


2014년 6월 25일 파리 트로카 대로에서 위안부 수요집회 지지발언


관심사 :
파리 교민들과 박근혜 퇴진집회 참여
전교조 법외노조 판정, 철도노조 파업, 위안부 문제
세월호 사건
남한의 만주화투사


오마이뉴스 목수정 기자 (이재명(찢) 후원회장) 프랑스 활동 좌파 작가
2016-17년 국내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가 열리던 시기 파리에서 촛불집회를 주도
2014년 7월 2일 기사 : 국정원이 나를 투사로 만든다 - 어느 프랑스인의 고백

프랑스-한국 친선협회 부회장

한국의 민주주의가 2000년대 중반부터 추락했다며 민주주의 추락을 막아햐 한다고 한다.

김대중 햇볓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북한인권문제 대한 견해 : 밖에서 서구의 잣대로 비판하는건 의미가 없다.

당신에게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란, 보다 평등하고 보다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의 변혁을 향한 의지로 결정된다.


북한 간첩혐의 체포

한 강 / 韓 江

한 강 / 韓 江
(1970년 음력 11월 27일 ~)
소설가
노벨상 수상자



'6.25 전쟁은 강대국의 대리전' 발언
최근에 이러한 비극적인 과정에서 미국군이나 동맹군이 남한 주민을 잔혹하게 살해했던 몇가지 사건들이 재조명될 뿐이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노근리 대학살로 미국군이 수백명의 시민을 태우고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돌다리 밑에서 며칠 동안 양쪽에 세워놓고 총을 쏴 그들 대부분을 죽였던 사건이다.


왜 이렇게, 만약 그들이 남한 난민들을 '인간 이하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들이 그들의 고통을 완전하고 진실하게 인지 했더라면
숭고한 인격체로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원식

윤석열 대통령 탄핵때 중국 방문 

중국 전승절에 찢 대신 참석 가닥


9월3일 전승절 헹사에 중국정부 공식초청 받아


필버 중단, 전례 없는 편파 진행 - 나경원

25.07.16 세월호 외력설 퍼뜨린 '자로' 국보법 위반 의혹

 네티즌 수사대 "자로"

왕후닝 / 王沪宁

 


한동훈

 







이왕가(李王家)

이왕가(李王家)는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대한제국 황실을 왕공족의 일개 가문으로 격하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조선왕실은 한일병합 이후에도 일본한테 왕공족 작위 받고
놀러다니면서 삶.


일본 본토 귀족 < 이왕가 < 천황가 순으로 높은 신분이었고
이왕가 대부분이 일본제국군에서 근무도 했음.




해방 후 한반도에 공화정이 들어선 뒤, 공화국 정부나 지식인 계층에서 사상에 따라 자신들의 편으로 포섭할 가치가 있는 군인이나 인텔리 세력보다도 더 증오받았던 것은 일본 제국의 일원이었던 조선 왕공족이었다. 봉건주의를 혐오한 북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이들의 입국조차 금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교체되며 '역사적 정통성'과 '민족문화의 자부심' 같은 맥락에서 구 조선 왕실에 대한 반감이 희석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궁>과 같은 가상 황실 드라마가 방영되며 황실 복원에 대한 열망도 고개를 들었을 정도였다. 역사연구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할 당시, 귀족 작위를 받은 많은 조선 및 대한제국의 인사들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명단에 오른 데 반해 왕공족은 친일 논란에서 큰 주목을 받지 않았고 도의적으로 등재를 피해가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당시 한국인들 중 일본군 장교 출신 상당수가 친일파로 분류되었으므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일본군에 복무하였던 왕공족 또한 명단에 들어가지 않아야 하느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논의 끝에 망국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나, 이들은 일본이 별다른 마찰 없이 대한제국을 편입하기 쉽게 하려고 왕공족 작위를 만들어 그들을 대우하였지 '협력에 대한 대가'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초대 운현궁 이희과 2대 운현궁 이준과 같이 친일 행위자 명단에 오른 이와 2대 사동궁 이건공처럼 아예 일본인으로 귀화한 사람도 있지만, 초대 사동궁 이강처럼 독립 운동의 의사를 보이거나 혹은 그의 아들 3대 운현궁 이우처럼 반일 의식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 인물도 있기 때문에 모든 왕공족에게 친일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 편찬자들은 왕공족에 있던 이들은 왕공족에 들어갔다는 이유가 아닌, 실질적인 친일 행적이 있는지 여부로 친일파인가를 판단했다. 다만, 같은 식의 역사학적 관점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있어 동일하게 적용되었는지는 비교하기 쉽지 않다. (친일인명사전 문서의 논란 문단 참조)

영친왕이건은 1947년 신적강하 전까지 왕 및 공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우는 전쟁 중 원폭으로 사망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태평양 전쟁 말기부터 쭉 조선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일단 영친왕과 이우는 워낙 어릴 때 일본에 간지라 인질에 가깝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았다.





흥친왕 이재면 / 興親王 李載冕, 완흥군 / 完興君
(1845년 7월 20일 - 1912년 9월 9일)
한일합병조약 체결시 황족대표
은사공채 하사



영선군 이준용 / 永宣君 李埈鎔
(1870년 7월 23일(음력 6월 25일) ~ 1917년 3월 22일(음력 2월 29일))
은사공채 하사

전남대 이종권 치사 사건 (남총련 사건)

폭행을 주도한 학생들은


한총련의 지부인 남총련의 정의찬 의장
경기도 산하기관인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사실이 기사화되면서 이 사건이 재조명되었다. 정의찬은 이 일이 밝혀지자 사무총장직을 사퇴했지만 이후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승철 정책위원


장형욱 정책위원



전병모 기획국장



최석주 전남대 오월대 대장



전연진 전남대 총학생회 투쟁국장


구광식 전남대 총학생회 섭외부장
2003년에 3개월 간 20여 회에 걸쳐 연쇄 강도강간을 저질렀고
결국 강간살인까지 저지르면서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소주 12병을 나눠 마시고 만취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남총련 사무실 방으로 끌고 가 그의 본명과 학생이 아니란 것을 확인받자 경찰 프락치란 것을 자백하라며 주먹은 물론 쇠파이프와 물병을 이용해서 구타하였다.

운동권 사건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

연세대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부산외대 김태수 음독 사건

한양대 이석 치사 사건

전남대 이종권 치사 사건 (남총련 사건)



연세대 사태
1996년 8월 13일부터 20일까지 한총련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교정에서 대규모 폭력 농성 시위를 벌인 사건.



1989년 5월 1일부터 3일까지 부산광역시 동의대학교에서 입시비리에 항의하던 학생들이 전경 5명을 납치 및 감금한 것도 모자라, 이를 구출하려던 경찰관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한 참사.

2025년 7월 18일 금요일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1984년 9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축제 기간에 캠퍼스를 배회하던 임신현, 손형구, 정용범, 전기동 등 외부인 4명을 (전기동씨는 방송통신대 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짐) 정보기관의 프락치(정보원)로 의심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목으로 폭행한 사건.

이 사건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건의 피해자들은 프락치가 아닌 무고한 민간인이기 때문에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이 올바른 명칭이다.




김도인 / 金渡寅
(1963년 3월 12일 ~)
2017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류시민 / 柳時敏
(1959년 7월 28일 ~)
징역 1년 6개월
제44대 보건복지부장관
제16·17대 국회의원



백태웅 / 白泰雄
(1963년 1월 10일 ~ )
1984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1984 징역 1년형
1989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조직
1992년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 구성 및 수괴임무종사죄 등으로 검찰이 사형을 구형
1999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8.15 특별사면
석방이후 미국 대학교 로스쿨로 유학 >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
2025 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산하 국제기준사법정의실현위원회 위원장 임명



백기영 / 白基榮
(? - ?)



심윤남 / 沈潤南
(? - ?)
1982년 입학



오재영 / 吳在瑛
1968년 전남 보성 출생
1987년 광주 광덕고등학교 졸업
1987년 서울대 사회대 외교학과 입학
1987년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 투쟁 참여, 구속
1989년 서울대 외교학과 학생회장. 사회대 학생회 기획부장
1990년 서울대총학생회 '반민중적 파쇼야합분쇄와 민중의 민주권리쟁취를 위한 특위위원장
1990년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연) 조사국(투쟁국) 활동
1991년 민중회의 조직국 활동
1992년 백기완 대통령 후보 선본 조직국 활동
1994년 서울진보청년회 초대 회장
1995년 서울진보청년회 2대 회장
1996년 진보민청(진보민중청년연합) 사무처장
1996년 결혼(처 권신윤)
1997년 권영길 대통령 후보 선본 조직국 활동
1998년 진보민청 사건으로 구속
2000년~2007년 민주노동당 조직국장, 조직실장
2009년~2011년 진보신당 대표 비서실장
2008년, 2012년, 2016년 노회찬 국회의원 보좌관(17대, 19대, 20대)
2017년 3월22일 심근경색으로 운명



윤호중 / 尹昊重
(1963년 03월 27일 ~)
폭행 직접 가담
제17·19·20·21·22대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정종주 / 鄭鍾柱
(? - ?)
도서출판 뿌리와 이파리 대표 : ▲인문 ▲과학 ▲좌파적 모색 등 3개의 편집부를 운영
제국의 위안부 소송 지원




조원봉 / 趙元鳳
(1958 - ?)
16대 총선 출마 - 무소속(경북 청송-영양-영덕)후보



피해자들은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조현수,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이었던 백태웅, 이정우, 윤호중 등이 연루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위에서 거론된 당사자들은 모두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였을 뿐 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던 유시민은 직접 물리적 폭행을 한 혐의가 없고 폭행을 지시하지 않았으나(유시민의 주장으로, 경찰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방관하였다는 죄목으로 함께 처벌받았다. 당시 사건을 현장에서 지휘·담당했던 김영복은 유시민은 폭행 사건 뒤 사태를 알았다고 주장했으며, 유시민은 폭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한 사실이 없지만 당시 서울시경 고위 간부의 지시에 따라 신병 확보가 쉬운 유시민에게 혐의를 씌웠다고 주장했다.

이정우
서울대 수석 합격생이었으며 서울대 학생회장이 되었다. 이후 정계 진출은 하지 않았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모두 합격해서 일명 '고시 3관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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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보수

정규재
조갑제

2025년 7월 12일 토요일

호통판사 입에서 터진 한남충 법정 품격 논란

 광주지방법원 의 한 판사

김형직 / 金亨稷

김일성 아버지 김형직은

독립운동가에 공산주의자는

치료도 안해줬을정도로 반공주의자에

독실한 개신교신자였음.

민주당, 민주유공자 대상, 혜택 확대 추진 학사징계만 받았어도 민주화 유공자

대표 법안과 핵심 내용

전진숙 의원 발의
-수배·해직·학사징계자도 5·18 민주 유공자로 인정
-약 222명 수혜 예상



전재수 의원 발의
-부마항쟁·6월항쟁 등 유족 지원 및 시설 설치 가능
-과거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 재추진



강준현 의원 준비안
-유신반대·전교조 해직 교사 등 포함
-교육·취업·주택·의료 등 다양한 지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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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기표를 보내며 정치권의 특권 의식을 다시 생각한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4/09/23/T2V5RXF4HFGLJNUCCW4VDSS7LY/

민주화 운동가인 장기표씨가 22일 별세했다.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 때 전태일의 분신을 접한 장씨는 이후 노동운동과 진보 정당 운동을 했다.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12년 동안 수배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장씨는 민주화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는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 안 받은 것”이라고 했다. “농사짓는 사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특별히 보상금을 따로 받는 건 파렴치한 짓”이라고 말했다. 먹고사느라 여유가 없었던 노동자·농부들과 달리 대학생들이 데모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조차 그는 대학생들의 ‘특권’이라고 했다.

장씨와 그의 부인이 민주화 보상금을 신청했다면 10억원 넘게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노년에 국가에서 받은 돈은 국민연금과 베트남전 참전 수당을 합쳐 월 220만원이 전부였다. 반면 2000년 이후 민주화유공자 4988명이 받은 보상금은 1100억원이 넘는다. 야권이 다수를 차지한 22대 국회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본인은 물론 부모와 자녀까지 지원해주는 민주화유공자법을 추진했다.

장기표씨는 최근에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에 앞장섰다. 국회의원들이 수당을 포함해 받는 연봉은 1억5700만원이다. 장씨는 국회의원의 사무실 경비 1억원과 후원금 1억5000만원 등을 모두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5억원 정도라고 추산했다. 이런 국회의원 연봉을 도시 근로자 평균인 월 400만원 수준으로 낮추자는 운동이었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포함하면 국회의원의 특권은 180가지가 넘는다. 장씨는 운동권이 스스로에게 혜택을 주는 민주화유공자법, 검찰 수사를 차단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같은 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회의원의 특권 중의 특권이라고 비판했다.




장씨는 지난 대선 때 대장동 비리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과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100만원을 선고받았다. 통장에는 5만7000원밖에 없었지만, 어렵게 돈을 마련해 벌금을 모두 납부했다. 그러나 민주화 특권층은 후보 매수 전과에 선거보전금 30억원을 미납하고도 다시 교육감 선거에 나섰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하고, 입법 권력으로 방탄 국회를 만들었다. 장씨는 “한국의 특권층은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출세한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특권층과 싸웠던 장씨의 마지막 경고다.

2025년 7월 6일 일요일

中 서해 구조물 규탄 결의에 7명 기권

민주당
-김영배
-이기헌
-홍기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진보당
손 솔
전종덕
윤종오


259명 중 찬성 252표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