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알박기 인사

52개 기관 59명



기관장급 x13명
  1. 이창훈 / 한국환경연구원 원장
  2. 김유열 / 한국교육방송공사 (EBS) 사장
  3. 김제남 /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4. 김창수 / 민주평통사무처 사무처장
  5. 윤범모 /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장
  6. 정기환 / 한국마사회 회장
  7. 이병호 /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8. 노수현 /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원장
  9. @@@ /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x1
  10. 박은수 /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원장
  11. 안종주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12. 윤형중 / 한국공항공사 사장
  13. 양영철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이사장

이사·감사 x46명+3
  1. 박정훈 / 신용보증기금 비상임이사
  2. 박순철 / 신용보증기금 비상임이사
  3. 원호준 / 한국자산관리공사 이사
  4. 조상호 / 독립기념관 비상임감사 - 천안함 망언
  5. 김경의 / 한국소비자원 상임이사
  6. 임지봉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비상임감사
  7. 김정범 / 예금보험공사 비상임이사
  8. 최재윤 /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비상임이사 (추가)
  9. @@@ / 한국교육시설안전원 x1
  10. 허운나 / 한·아프리카 재단 비상임이사
  11. 신동화 / 도로교통공단 (한국도로교통공사) 비상임감사
  12. 예종석 / 한국공황공사 비상임감사 (추가)
  13. @@@ / 예술의전당 x1
  14. 최낙용 / 영화진흥위원회 비상임위원
  15. 박진태 / 게임물관리위원회 비상임이사
  16. 송성일 / 한국농어촌공사 상임이사
  17. 김상민 / 한국임업진흥원 비상임이사
  18. 신동미 / 한국가스공사 비상임이사
  19. 명희진 /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위원
  20. 선한길 / 한국남부발전 비상임이사
  21. 김명수 /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위원
  22. 오정훈 / 강원랜드 경영지원본부장 (상임이사?)
  23. 허신학 / 한국광해광업공단 비상임이사
  24. 김 철 / (주)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
  25. 임찬기 /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
  26. 유휘종 / 한국에너지공단 상임이사 또는 한국가스안전공사 신재생에너지센터소장
  27. 이희진 / 한국석유관리원 비상임이사
  28. 허 완 /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상임감사
  29. 김선희 / 한국디자인진흥원 비상임감사
  30. 김예한 / 한국디자인진흥원 비상임이사
  31. 주영남 / 한국에너지재단 상임이사(사무총장)
  32. 안정곤 /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상임이사
  33. 장도중 / 신용보증재단중앙회 상임이사
  34. 김진우 /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비상임이사
  35. 김태희 /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비상임감사
  36. 김효진 /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비상임감사
  37. 배규식 / 노사발전반재단 비상임이사
  38. 이진수 / (재)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 감사실장
  39. 정혜승 / 환경보전협회 비상임이사
  40. 정재혁 / 국토안전관리원 비상임이사
  41. 윤대기 / 인천국제공항공사 상임이사
  42. 김재승 / 한국남동발전 비상임이사 (추가)
  43. @@@ / 주택도시보증공사 x1
  44. 최병일 / (주)SR 상임이사
  45. 변명규 / 코레일테크 상임이사
  46. 김창희 /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비상임감사
  47. 원민경 / 한국건강가정진흥원 비상임이사
  48. 윤홍식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비상임이사
  49. 이한솔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비상임이사

그외
  1. 나희승 / 한국철도공사 사장
  2. 이내영 / 여심위원장 2020임명
  3. 이영범 /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4. 이종국 / 수서고속철도 사장
  5. 김상철 / 한국동서발전 상임이사
  6. 황재운 / 그랜드코리아레저 비상임이사
  7. 전현희 / 국민권익 위원장
  8. 한상혁 /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9. 강현수 / 국토 연구원장
  10. 김사열 / 국가 균형발전 위원장
  11. 김순은 / 자치분권 위원장
  12. 문성현 / 경제사회 노동 위원장
  13. 박종수 / 북방경제 협력 위원장
  14. 송기춘 /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 위원장
  15. 정근식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장
  16. 정해구 / 경제인문 사회연구회 이사장
  17. 홍장표 / 한국개발연구원 KDI 원장
  18. 유시춘 / EBS 이사장, 유시민 친누나
  19. 이태수 /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장
  20. 홍현익 / 국립 외교원장
  21. 황덕순 / 한국노동 연구원장
  22. 심성보 / 문정부 대통령기록관장
  23. 노태악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참고: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cbest&no=48066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20324_0001806088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22/03/235850/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2/07/04/AEOAYH7XGFC5DNZOMSKZYFDI4Q/

2022년 6월 28일 화요일

한국 극우, 베를린서 소녀상 철거 원정시위

2022년 6월 26일
한국 극우, 베를린서 “소녀상 철거”…독 시민단체 “이해 불가” 맞불 집회






위안부 사기 청산 연대 소속 4명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김병헌 국사교과서 연구소장

이우연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요시다 켄지

2022년 6월 23일 목요일

반민주행위자 범주

1.매국 : 1명

2.수작/습작 > 친문 또는 알박기

3.중추원 > 정치/국회

4.제국의회 > 청와대

5.관료 > 공무원

6.경찰

7.군

8. 사법 > 법조

9.친일단체 > 시민단체 ex) 여성단체, 촛불연합, 노동단체 등등

10.종교

11.문화/예술 + 연예

12.교육/학술 ex) 페미, 전교조

13.언론/출판 > 방송/언론

14.경제 ex)부동산, 탈원전, 세금 등등

15.지역유력자 > 송철호?(울산시장 사건)

16.해외 > 중국몽/친중

17.기타

18. 밀정 > 간첩/이적행위

2022년 6월 17일 금요일

경찰 논란

김태균 /
(? - )
해경청 형사과장 > 울산해양경찰서장
연평도 공무원 사건



김홍희 /
(? - )
남해지방 해양경찰청장 > 해양경찰청장 (해경 역사상 최초로 두 계급 승진)
연평도 공무원 사건



노규호
(? - )
경기북부경찰청 수사부장
이재명 법카유용 불송치가 맞다



류삼영
(? - )
총경
경찰국 신설 반발 > 경찰서장 회의주도



박송희
(? - )
전남 경찰청 계장
곡성 성폭행 사건



옥현진 /
(? - )
인천해양경찰서 수사과장 > 해경청 외사과장
연평도 공무원 사건



윤성현 /
(? - )
해경청 수사정보국장 > 남해지방 해양경찰청장
연평도 공무원 사건



이임재 /
(1968 - )
용산서장
이태원 참사 논란




출처: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06/18/L4FW5ENXLBG6VONXFZJXMG3PW4/

2022년 6월 16일 목요일

반민주행위자 정의

‘반민족행위자’와 달리 ‘반민주행위자’는 그리 익숙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반민주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실제로 있었다. 1960년 제정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은 반민주행위를 “헌법, 기타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 또는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제 원칙을 파괴한 행위”로 규정하고, 이들의 피선거권과 선거권, 공무원이 되는 자격 등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960년 이승만·자유당 정권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으로 무너졌고, 그 뒤 부정선거 책임자에 대한 처리 등 과거 청산을 위한 혁명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강한 여론의 힘으로 이 같은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1960년 4월26일 이전 특정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반민주행위를 한 자”, 곧 ‘지위범’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으면 거대한 권력 구조의 손발이 됐던 말단 하수인들만 뒤집어쓸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과거 청산 작업에서는 이처럼 지위에 따른 책임을 묻곤 한다. 우리나라 제헌의회에서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만들 때에나, 프랑스·오스트리아 등에서 2차 세계대전 뒤 부역자를 처벌할 때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부정선거 당시 국무위원, 정부위원 등을 포함해 629명의 지위범이 공민권을 제한당했다. 또 ‘현저한’ 반민주행위를 한 1만4000여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1961년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는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포함해 4·19 혁명의 모든 성과를 거품처럼 날려버렸다. 반민족 청산의 기회를 이승만 정권이 날려버렸다면, 반민주 청산의 기회는 박정희 정권이 날려버린 셈이다. ‘국정교과서 도입하자’ 등 이승만과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세력들이 ‘역사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미완의 과거 청산을 또다시 곱씹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6903.html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ㅎ

 638. 하삼식(河三植) - 고등경찰

광복 후, 제주도경찰청 국장

639. 하준석(河駿錫) - 중추원 참의
광복 후, 조선 승마협회 이사

640. 하판락(河判洛) - 경남 경찰부 고등계 형사, 외사주임

641. 한규복(韓圭復)
와세다대학 정치경제과 졸업, 한말 서기관 주임2등(정리과장),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감사관, 동래군수, 충남 참여관(1921), 경북 참여관(1924), 충북 지사(1926), 황해 지사(1929), 중추원 참의, 경성양조 주식회사 취체역, 중조주조조합 연합회 회장

642. 한능해(韓凌海) - 전당포, 철문공장 등 경영, 인천 악사암 주지, 일본인 경영 호국사 승려, 국방헌금

643. 한상억(韓相億) - 남작(한창수한상기한상억)

644. 한석원(韓錫源) - 목사

645. 한암회(韓巖回) - 내선협회 부의장
광복 후, 제헌국회의원

646. 한익교(韓翼敎) - 부의원 및 경방단 참여자

647. 한정석(韓定錫) - 중추원 참의, 경시(충청북도)

648. 한준해(韓駿海)

649. 한창동(韓昌東) - 중추원 참의

650. 한천현(韓千鉉)

651. 허기엽(許基燁) - 통영경찰서 형사, 주임소 사법계 형사, 읍회 의원, 경상남도회 의원

652. 허병조(許炳朝) - 고등경찰

653. 허일(許逸)

654. 허지(許智) - 경상북도회 의원, 대구부회 의원,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경북상공주식회사 사장

655. 현영섭(玄永燮)
녹기연맹 이사, 녹기일본문화연구소 소장, 황동학회 이사, 국민정신조선연맹 감사, 국민정신조선연맹 기관지 <총동원> 편집, 내선일체실천사<내선일체> 발행 이사
광복 후, 주일 미대사관 근무

656. 현준호(玄俊鎬)
전라남도 평의원, 시국대책사상보국연맹 전남지부장, 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연맹 이사, 중추원 참의

657. 호경원(扈京源) - 고등계 형사

658. 홍낙구(洪落龜) - 서울 종로경찰서 사법주임
광복 후, 8관구 경찰서장

659. 홍사묵(洪思黙) - 고등계 형사

660. 홍성원(洪性媛)

661. 홍순복(洪淳福)
전북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 매일신보 충북지사장, 국민총력충청도지부 이사, 의용대선전지도위원, 대화동맹 지방위원, 녹기연맹 지방역원, 조선농회 부회장, 정신대 간부

662. 홍순색(洪淳索)

663. 홍순재(洪淳宰) - 전남도청 근무, 제주읍장
광복 후, 제주도경찰후원회 이사

664. 홍양명(洪陽明) - 만선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광복 후, 전조선문필가협회 의원, 방송국 부국장, 대한노총 부위원장

665. 홍종국(洪鍾國) - 중추원 참의, 강원도 참여관(1934)

666. 홍종대(洪鍾大) - 임시토지조사국 기수
광복 후, 삼척세무소 울진지서장

667. 홍종철(洪鍾轍) -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고창군 면장, 고창고등보통학교 전임이사
광복 후, 건국기금조성회 부장

668. 홍종희(洪琮喜)

669. 홍찬(洪燦)

670. 홍치업(洪致業) - 중추원 참의

671. 홍해룡(洪海龍) - 왜관경찰서 고등계 형사

672. 황~봉(黃~鳳) - 이리경찰서 고등계 형사

673. 황원석(黃元錫) - 병기제조 유기공출사건

674. ~녕중(~寧重)

675. ~상노(~相魯)




반민특위 피의자 명단




출처:
반민특위 연구(이강수, 나남출판)
네이버 블로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ㅊ,ㅍ

589. 차기범(車箕範) - 밀정
590. 차남진(車南鎭) - 중추원 참의, 목포부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의원
광복 후, 용강장학회 설립

591. 차용준(車龍俊)

592. 차재정(車載貞) - 언론보국회 의원, 대동민우회 이사

593. ~국혁(~國赫)

594. 최남선(崔南善)
중추원 참의, 조선사편수회 편수위원(1928), 언로보국회 회원, 임전보국단 이사, 만몽일보 고문(1938), 국민총력조선연맹 참가, 만주건국대학 교수(1938),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임원

595. 최린(崔麟)
중추원 참의(1934), 매일신보 사장(1937), 시중회 이사(1934), 임전보국단 단장(1941),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조선언론보국회 회장

596. 최림세(崔霖世) - 군 기관 관련자

597. 최상용(崔相龍) - 고등계 형사

598. 최석현(崔碩鉉) - 강원도 고등경찰과장, 강원 영월 군수

599. 최석현(崔錫鉉) - 경남경찰부 경부(1928), 함남 경찰관 교습소장

600. 최선문(崔善門) - 일제 경부

601. 최승열(崔昇烈) - 중추원 참의, 전북도회 의원, 전주부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의원(1941)
광복 후, 전북여객 자동차회사 사장

602. 최승묵(崔昇黙) - 중추원 참의

603. 최승희(崔昇熙) - 고등계 형사

604. 최양금(崔良金) - 황해 고등계 형사

605. 최양호(崔養浩) - 중추원 참의, 강원도회 의원

606. 최연(崔燕) - 경기도 경찰부 경무과장, 경찰최고훈장 수상
광복 후, 경기도경찰청 초대 경무감, 수도청 고문관

607. 최연국(崔演國) - 중추원 참의

608. 최영건

609. 최용근(崔龍根)

610. 최윤(崔潤) - 중추원 참의

611. 최윤주(崔允周) - 중추원 참의, 만주간도민 회장

612. 최을성(崔乙成) - 서울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

613. 최익수(崔翊守) - 노기주의 대서업자

614. 최익하(崔益夏) - 평북 참여관(1937), 경기도 고양 군수

615. 최인규(崔寅奎) - 문인, 영화감독
광복 후, 조선문화인협회 위원

616. 최재서(崔載瑞) -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국민문학> 발간, 조선언론보국회 상무이사
광복 후, 민족정신앙양 전국문화인총궐기대회 발기인(1948)

617. 최재웅(崔再雄) - 헌병

618. 최재준(崔在俊) - 경방단 부단장

619. 최점규(崔占圭) - 전북 목포경찰서 고등계 형사

620. 최정원(崔正源) - 남작(1915년 작위를 물려받음)

621. 최제봉(崔濟鳳) - 고등계 형사

622. 최종용(崔鍾龍) - 고등계 형사, 삼척혁신회사건 취급

623. 최준성(崔俊成)
1936년 순사로 시작 경부로 승진, 순사부장, 횡성, 고성 보안주임 및 사법주임, 강원도 경찰부 보안과, 강원도 경부, 영월면장

624. 최준식(崔俊植)
동래경찰서 순사(동래경찰서 사법주임이 노덕술), 흥아문화협회 이사장 및 북지파견 제1800부대 특별공작원

625. 최준집(崔準集)
중추원 참의, 대화동맹 심의원, 강원도회 의원, 대의당원, 흥아보국단 강원도 위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1943)

626. 최지환(崔志煥)
대한제국시 군대해산 협력, 중추원 참의, 평안북도 참여관, 충청남도 참여관, 충청북도 순사교습소장, 위생과장

627. 최진세(崔震世) - 최준식의 동생, 흥아문화협회 촉탁, 국제문화협회 이사
광복 후, 한민당원

628. 최춘석(崔春錫)

629. 최탁(崔卓)
군청 서기, 마포경찰서 고등과 근무, 함경남도 경찰부 보안과장, 만주국 일본부령사, 서대문 구장, 고양 군수

630. 최홍길(崔弘吉) - 강원도 사법주임, 고양군 외금강 면장

631. 최화일(崔和日) - 징용징병, 정신대 동원

632. 최환동(崔煥東) - 헌병보

633. 최~국(崔~國)

634. 편덕열(片德烈) - 종로경찰서 고등과 형사, 관동군 밀정

635. 편무백(片茂柏)


636. 편무재(片茂材) - 서산군 안면도 경방단장, 충맹단 조직(부단장)
광복 후, 대한경제보국회 창립위원

637. 표문~(表文~)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ㅈ

513. 장극천(張極天) - 고등계 형사
514. 장덕식(張德植)

515. 장록엽(張綠葉) - 이근택의 첩, 밀정

516. 장명원(張明遠) - 헌병사령부 헌병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1943년 반도의용대 조직(대장)

517. 장문재(張文才) - 전북 경찰부 밀정, 김대정의 밀정

518. 장성석

520. 장성선(張成船)

520. 장순례(張順禮) - 여자 밀정

521. 장용관(張龍官) - 중추원 참의

522. 장우형(張于炯) - 헌병 밀정, 기독교계 애국지사 체포

523. 장윤식(張潤植) - 중추원 참의, 황해도 참여관, 충남 참여관

524. 장인달(張仁達) - 황민화 계몽단장, 경방단 부단장
광복 후, 국민회 경남위원, 대한청년단 경남단장

525. 장인환(張寅煥) - 고등계 형사

526. 장자관(張子寬) - 고등계 형사(양산경찰서 위생계)
광복 후, 경남 경찰부장(미군정)

527. 장준영(張俊英) - 중추원 참의, 강원도 도회의원

528. 장직상(張稷相)
구한말 참봉, 감찰관, 일제시기 군수, 제1은행 취체역, 상업은행 취체역, 경전(京電) 취체역,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경북지부장, 흥아보국단 경북도 위원, 대화동맹 심의원, 대의당 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의원
광복 후, 애국금헌성회 의원, 조선경제협의회 감사, 대한생명보험회사 사장, (주)남선전기 사장

529. 장천형(張千炯) - 고등계 형사

530. 장헌백(張憲栢) - 도지사, 중추원 참의, 이왕직 장관

531. 장헌식(張憲植)
총독부 참여관, 충북 지사(1918), 전남 지사(1921), 중추원 참의(1927~1939), 국민총력조선연맹 의원, 임전보국단 이사

532. 전기대(全箕大) - 황해도 장연 군수, 평산 군수, 황해도 내무부 관업과장

533. 전부일(全副一) - 국민협회 회장, 박춘금의 앞잡이, 경무부 촉탁,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534. 전정윤(全正允) - 순사시험 합격(1931), 인천에서 고등형사로 근무(15년)
광복 후, 조선알미늄주식회사

535. 전필순(全弼淳) - 목사, 혁신교단 조직, 신사참배, 황민화 주장
광복 후, 기독교문화협회 부회장

536. 전학일(全學日) - 경방단장

537. ~한승(~漢承) - 경방단 부단장, 비행기 헌납

538. 정경수(鄭경守) - 고등계 형사(사법주임)

539. 정교원(鄭僑源)
총독부 참여관, 전북 참여관(1929), 전남 참여관(1930), 중추원 참의, 황해도 지사(1933), 충북지사(1945),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540. 정국은(鄭國殷) - 조일신문 기자, 경기도 경찰부장 밀정
광복 후, <국제신문> 편집국장, 연합신문 도쿄특파원

541. 정귀동(鄭貴東) - 경방단 간부

542. 정달호(鄭達鎬) - 헌병보
광복 후, 대구여관 운영

543. 정도일(鄭道逸) - 홍천고등주임, 남궁억선생 감시

54. 정모(鄭模) - 독립운동가 밀고

545. 정병조(鄭丙朝) - 중추원 참의, 배정자와 의남매
광복 후, 우익정당 통합운동 주도, 기독교감리교대학 설립

546. 정병칠(鄭丙七) - 전남 경찰부 고등계 밀정

547. 정상동(鄭상童)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여행사 전무이사

548. 정성부(鄭成富) - 고등계 형사

549. 정성식(鄭成植) - 북부산 경찰서 고등계 주임, 조선독립당 순국당 간부 체포

550. 정연기(鄭然基) - 중추원 참의, 전북 참여관(1939), 전북지사

551. 정영수(丁永壽) - 목포경찰서 형사

552. 정운기(鄭雲基) - 도회 의원, 면장

553. 정인과(鄭仁果)
목사,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 총간사, 상치위원회 조직(1939), 국민총력연맹문화부 문화위원(1941), 기독교 신문협회 회장(1942)
광복 후, 임시정부 영수 환국 전국환영회 재무위원, 3.1 동지회 위원

554. 정인소(鄭寅笑) - 조선총독부 경무부 촉탁, 황민생활사 사장
광복 후, 군정청 학무국 계몽강사

555. 정인익(鄭寅翼)
조선일보 기자, 중외일보 기자, 매일신보 사회부장 겸 편집부장, 조선언론보국회 사무국장,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1943)
광복 후, 애국금헌성회 위원, 조선문필가협회 위원, 민주국민당 위원

556. 정주팔(鄭周八) - 강원도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춘천경찰서장

557. 정진기(鄭震基) - 경남 합천군 대양면장, 경남도회 의원, 동양척식주식회사 농감

558. 정천한(鄭天漢)

559. 정춘수(鄭春洙)
민족대표 33인,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1941), 조선전시종교보국회 이사, 조선감리교 제4대 감독, 경성기독교연합회 부위원장(1938)

560. 정춘영(鄭春永) - 헌병보, 류관순 체포
광복 후, 여관업 운영

561. 정태규(鄭泰奎)

562. 정태균(鄭泰均) - 중추원 참의

563. 정태복(鄭泰福) - 군수품 송탄유공장 운영

564. 정팔택(鄭八澤)

565. 정해붕(鄭海鵬) - 중추원 참의

566. 조갑이(趙甲伊) - 마산경찰서 고등계 형사

567. 조규순(趙奎洵)

568. 조묵제(趙黙濟)

569. 조병상(曹秉相)
경기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종로 경방단장, 국민회 이사, 갑자구락부 위원, 조선지원병후원회 이사, 국민총력연맹 이사, 국민총동원연맹 이사, 대화동맹 이사, 임전보국단 이사, 흥아보국단 발기위원

570. 조석환(曹錫煥) - 형사부장으로 특채, 나주 고등계 형사

571. 조업상(曹業相)

572. 조용철(曹龍哲)

573. 조원환(曹元煥) - 만주국 관리, 봉천시 주사
광복 후, 조선농회 지도과장

574. 조원흥(趙元興) - 자작(조대호의 양아들, 1933년 작위를 물려받음)

575. 조응선(趙應善)

576. 조익환(曹益煥)

577. 조점배(趙點培)

578. 조점제(趙點濟) - 고등계 형사

579. 조태환(曹泰煥) - 전남 고등계 형사

580. 조희창(趙熙彰) - 순사보

581. 주대관(朱大關) - 동양청년연맹 위원, 대의당 의원

582. 주병환(朱秉煥) - 대구부회 의원, 학병권유 대구부 대표
광복 후, 군정청 보건 후생부장 대리

583. 주요한(朱耀翰) -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대화동맹 의원, 대의당 의원
광복 후, 대한문화인협회 위원, 한국문학가협회 위원(1949)

584. 진학문(秦學文)
중추원 참의, 만주국 촉탁, 만주국 국무원 참사관, 국민의용대 총사령부 간부, 대화동맹 이사
광복 후, 한국무역진흥공사 부사장, 한국무역협회 일본지사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상임부회장

585. 진헌식(陳憲植) - 경무국장 지전과 밀착, 청우회 회원
광복 후, 제헌국회의원

586. 진희규(秦熙규) - 중추원 참의, 경북도회 의원

587. 진희단

588. 진희채(秦喜蔡) - 중추원 참의, 도평의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ㅇ Part 02

389. 이각종(李覺鍾)김포군수(1919), 총독부 내무부 사회과 촉탁, 국민총련 조선연맹 참여, 조선임전보국단 의원, 백악회 조직, 황민화단체 대동민우회 고문

390. 이갑녕(李甲寧) - 상해거주민 조선인회 회장, 계림청년단 단장, 일본 외무성 촉탁

391. 이갑용(李甲用) - 중추원 참의, 경남도회 의원, 고성면 협의회원

392. 이개재 - 노덕술 호위경관

393. 이경림(李景林) - 고등계 형사

394. 이경우(李卿雨) - 일본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졸업, 남작(이규항의 손자)

395. 이관석(李官錫) - 의사

396. 이광수(李光洙)
조선문인협회 회장, 조선임전보국단 준비위원,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간부
광복 후, 흥사단 국내위원회


이계한(李啓漢 : 1949년에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반민특위에 검거되었다.



397. 이교식(李敎植) - 중추원 참의

398. 이구범(李九範) - 경기도경찰청 경부보,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인천시회 의원, 중부경찰서장, 수도청 부청장

399. 이귀호(李龜鎬)

400. 이규상(李揆尙) - 남작혐의

401. 이규재(李奎載)

402. 이극일(李克一) - 고등계 형사

403. 이근수(李瑾洙) - 중추원 참의, 양구군수

404. 이근택(李根澤) - 조선군 촉탁
광복 후, 조선민족청년단 위원

405. 이기권(李基權) - 관동군 촉탁,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

406. 이기동(李起東) - (주)일선기업 상무 취체역

407. 이기방(李基枋) - 충남지사, 황해도 참여관, 함북 참여관

408. 이기승(李基升) - 화양의숙 설립, 중추원 참의

409. 이기용(李琦鎔)
자작(1922년 작위를 물려받음), 일본귀족원 의원, 대원군의 큰 조카인 완임군의 큰아들, 고종황제의 5촌 조카

410. 이길석(李吉錫)

411. 이대우(李大羽) -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경북 경찰국 수사과장

412. 이덕용(李德鎔) - 후작(이재각의 후손, 1935년 작위를 물려받음), 중추원 참의

413. 이덕주(李德柱) - 후작(이해창의 후손, 1945년 작위를 물려받음)

414. 이덕항(李德抗)

415. 이동욱(李東旭) - 목사
광복 후, 소년체육협회 부회장

416. 이두철(李斗喆) - 동화백화점 사장
광복 후, 경성상공회의소 대의원

417. 이린희(李麟熙) - 고리대금업, 의열단의 독립운동자금 요구 받고 밀고

418. 이만수(李晩秀) - 고등계 형사, 고성 고무공업사 사장, 애국금헌성회 위원

419. 이명구(李明求)
경성의학전문대학 졸업, 의사,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충북지부장, 국민총력연맹 이사

420. 이명호(李明鎬) - 부회 의원, 국민총력연맹 간부
광복 후, 인천시의원, 대한상공보국회 회장, 제1대 국회의원선거 출마

421. 이명흠(李明欽) - 경부, 신의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강원도 경찰청 부청장

422. 이문환(李文煥) - 금광철물공장(수류탄 등 제조) 운영, 광주사관구에 총부
조선기계제작소 경영(1949)

423. 이민호(李敏浩) - 청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424. 이범익(李範益)
춘천군수(1912), 중추원 참의, 중추원 고문, 강원 지사(1929), 충남 지사(1940), 경남 참여관(1937)

425. 이병길(李丙吉)
후작(이완용의 양자, 1926년에 작위를 물려받음),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426. 이병열(李丙烈) - 중추원 참의, 국민협회

427. 이병옥(李丙玉) - 남작(이윤용의 손자, 1938년에 작위를 물려받음)
광복 후, 대한독립청년연합 대표

428. 이병주(李丙周) - 남작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429. 이복성(李福成) - 충북 청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제3대 국회의원

430. 이봉수(李鳳洙)

431. 이산연(李山衍) - 청주고보 졸업, 조선신궁 부설 황전강습소 졸업, 청주신사의 출사(出仕), 신직(神職)

432. 이상(李尙)

433. 이상우(李相禹) - 언론인

434. 이상협(李相協) - <매일신문> 초대 부사장, 관동군 촉탁, 임전보국단 의원(1941)
광복 후, 자유신문 부사장

435. 이상홍(李相洪)

436. 이성구(李成求) - 면직원

437. 이성근(李聖根)
함북 참여관(1932), 충남지사(1939), 평북 고등과장, 경시,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의원, 임전보국단 이사,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국민총력조선연맹 기획위원, <매일신보> 사장
광복 후, 대동청년단 기획부장, 조선민족청년단 서울시단부 위원

438. 이성엽(李成燁) - 전라북도 경찰부 고등계 형사, 김제경찰서장

439. 이성환(李晟煥) - 조선언론보국회 상무이사, 국민동원 총진회, 임전보국단 이사, 조선체육회 이사

440. 이수선(李秀先) - 헌병보
광복 후, 면장

441. 이승구(李承九) - 중추원 참의

442. 이승수(李승洙)

443. 이승우(李升雨)
중추원 주임참의, 대의당 위원, 대화동맹 심의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흥아보국단 상임위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조선사상범보호관찰심사회 위원
광복 후, 경성신탄총제회사 사장

444. 이안순(李顔淳) - 강원도 고등과 형사부장
광복 후, 전북도청 사찰과장

445. 이여식(李呂寔) - 목사, 독립운동가 밀고

446. 이연(李演)

447. 이영개(李英介) - 박춘금의 부하, 금강항공주식회사 대표, 도쿄의 황도회 부회장

448. 이영구(李英九) - 국방헌금

449. 이영두(李永斗)

450. 이영배(李榮培) - 광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장성경찰서 사법주임

451. 이영수(李影洙)

452. 이영우(李榮雨) - 부산 북서, 남서 고등계 형사

453. 이영주(李永柱) - 백자(이지용의 큰 손자, 1928년 작위를 물려받음)

454. 이영찬(李泳贊) - 중추원 참의, 평안도회 의원, 임전보국단, 흥아보국단 평북위원

455. 이완종(李完種) - 남작(이건하의 손자, 1919년 작위를 물려받음)

456. 이용제(李龍濟) - 문인

457. 이원구(李元九) - 자작 혐의(부친 이창훈이 1947년 사망)
광복 후, 교원

458. 이원보(李源甫)
중추원 참의, 평북 참여관(1935), 전남 참여관(1937), 전북지사(1945), 종로경찰서 경부, 경기도 형사과장, 평남 경시

459. 이원호(李元鎬) - 남작(이용원의 후손, 1911년 작위를 물려받음)

460. 이위영(李胃榮)

461. 이의홍(李宜鴻)

462. 이재갑(李載甲) - 대의당 의원

463. 이정립(李正立) - 목사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애국금헌성회 위원

464. 이종덕(李鍾悳) -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의원(1941), 면협의원

465. 이종린(李鍾麟)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위원, 임전보국단 상무이사(1941), 조선종교단체전시보국회 천도교 대표위원(1943),
제헌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 천도교 총본부 위원

466. 이종섭(李鍾燮) - 중추원 참의, 전남포부회 부의장

467. 이종순(李鍾淳) - 전남 경방단장
광복 후, 제헌국회의원선거 참여

468. 이종승(李鍾承) - 자작(자작 이충세의 상속인, 1934년 물려받음)

469. 이종은(李鍾銀)
서천군수, 전남 참여관(1932), 홍천면장

470. 이종찬(李鍾贊) - 자작(이하영의 아들), 일본 육사 출신
광복 후, 국방부 제1국장 겸 정훈과장(1949), 수도경비사령관

471. 이종하(李鍾河)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전주 고등계 형사(1949)

472. 이종형(李鍾滎)
총독부 경무국 밀정, 관동군 촉탁, 친일단체 총진회 조직, 일본 관동군 토공군사령부 고문
광복 후, 민중당 당수, 대동신문사 사장, 독촉국민회 선전부장

473. 이주영(李周永)

474. 이준성(李俊聖) - 독립운동 헌병대에 밀고, 포상금 수령

475. 이중화(李重華) - 인천경찰서 고등계 형사(1920), 순사부장(1930)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애국금헌성회 위원

476. 이진하(李鎭河) - 전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477. 이창근(李昌根) - 충북지사, 경북지사, 경북 참여관, 경기도 참여관(1939)

478. 이창수(李彰洙) - 남작(이용원의 손자, 1939년 작위를 물려받음)

479. 이창수(李昌洙) - 매일신문 기자
광복 후, 민족대표(이승만) 외교사절후원회 이사, 동아일보 기자, 미군정청공보부 여론국장

480. 이창영(李昌永) - 경남 산청경찰서 고등계 형사

481. 이춘옥(李春玉) - 고등계 형사

482. 이충호 - 퇴계 이황 후손

483. 이취성(李翠星) - 일명 강신상, 이종영의 부인, 소학교원
광복 후, 대한일보사 사장, 여자국민당 청년부장

484. 이택주(李宅柱) - 자작

485. 이풍한(李豊漢) - 남작(이종건의 양자, 1931년 작위를 물려받음)

486. 이필순(李弼純) - 헌병보, 인천부청 재무계장
광복 후, 인천부청 관재계장

487. 이한규(李翰圭) - 학교 평의원

488. 이항발(李恒發) - 경무국 촉탁, 이각종과 대동민우회 발기
광복 후, 제헌국회의원

489. 이항식(李恒植) - 중추원 참의

490. 이해국(李海菊) - 자작(이재곤의 손자, 1943년 작위를 물려받음)

491. 이해산(李海山) - 협화회 회장

492. 이해승(李海昇) - 후작(풍선군 이한용의 아들)

493. 이해용(李海用) - 함북 참여관(1941), 경북 참여관(1943)
광복 후, UN조선위원단 환영위원

494. 이행열(李行烈) - 허위증거로 김태석 옹호

495. 이향우(李鄕雨) - 자작

496. 이현경(李賢卿) - 근우회 중앙위원, 동아일보 기자

497. 이홍묵(李鴻黙) - 자작

498. 이홍재(李弘宰)

499. 이희적(李熙迪) - 중추원 참의, 신의주부회 의원, 흥아보국단 평북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의원(1941)

500. 임달수(林達洙) - 정치사상 관련자
광복 후, 해림양조 사장

501. 임명수(林明洙)
중추원 참의, 충남도회 의언, 흥아보국단 충남의원, 임전보국단 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502. 임명순(林明珣) - 전북 진안 군수, 남원 군수

503. 임병석(林炳奭) - 목사

504. 임병호(林炳浩)

505. 임병희(林炳熙)

506. 임석규(林錫圭) - 헌병보조원, 고등계 형사

507. 임억수(林億壽) - 경남 의령, 수산경찰서 고등계 형사

507. 임영래(林榮來)

509. 임의재(任宜宰) - 자작(임선준의 손자, 1921년 작위를 물려받음)

510. 임창수(林昌洙)
중추원 참의, 충남도의회 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1940). 임전보국단 이사(1941)

511. 임흥순(任興淳)
경성부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의원, 학도병성동익찬위원회 위원장, 조선임전보국단 의원(1941), 임전대책협의회 의원(1941)
광복 후, 제2,3대 국회의원, 서울시장

512. 임~재(任~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ㅇ Part 01

321. 안병헌(安秉憲)

322. 안인식(安寅植) - 명륜학원, 명륜연성소 설립 후 황국정신 체득, 목사

323. 안재욱(安在旭)

324. 양병일(楊丙一) -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 황산대첩비 파괴

325. 양성순(梁星淳) - 전북경찰서 순사부장

326. 양성준(梁星俊)

327. 양연우(梁連우)

328. 양영환(梁永煥) - 만주국 고등계 형사부장

329. 양원성(梁元成) - 서울 종로경찰서 고등형사, 나주읍 노무자 징용

330. 양재홍(梁載弘) - 고등계 형사부장, 김제전매서 서장

331. 양정묵(梁正黙) - 밀정, 승려, 충맹단 조직부장

332. 양제박(梁濟博) - 광주지방법원 서기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입법의원, 제주도 보궐선거 참여

333. 양주삼(梁柱三)
목사, 기독교 감리회 제2대 총이사, 내선감리교회 합동 문제 연합위원회 회장(1939),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1940), 흥아보국단 상무위원(1941), 조선임전 보국단 의원(1941)
광복 후, 태평양 동지회 고문(1948), 대한적십자사 총재(1949)

334. 엄창섭(嚴昌燮) - 경남 참여관, 함남 참여관, 중추원 참의, 경남 지사, 총독부 학무국장

335. 염경훈(廉璟薰) - 함경남도 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336. 염병휘(廉炳煇)

337. 염음전(廉音全) - 애국부인회 관계자

338. 예종석(芮宗錫) - 경성부회 의원, 대정친목회 회장, 경성군사후원연맹 위원

339. 오갑수(吳甲壽) - 고등계 형사

340. 오경팔(吳景八) - 고등계 형사

341. 오경선(吳競善)
교육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경성부회 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경성기독교연합회 평의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광복 후, 보건후생국 고문(1946)

342. 오명진(吳明鎭)
산청군 도회의원, 산청군 경방단장, 산청 국민총력연맹 간부, 산청 지원병후원회 회장, 산청군 농회 회장, 진주세무서 소득세 조사위원회 위원, 산청군 금융조합장, 도기주식회사 사장
광복 후, 국민회, 청년단, 민보단 회원

343. 오병욱(吳炳旭) - 경찰공로기장 수여

344. 오세윤(吳世尹) - 황해도 보안과장, 군수

345. 오세준(吳世俊) - 해남경찰서 순사부장, 광주경찰서 고등계 형사, 국세조사훈장

346. 오숭은(吳崇殷) - 평남도회 의원, 평양부회 의원, 군수공장 대동공작소 경영,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347. 오예선(吳榮繕)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나주 삼도면 부면장

348. 오예영(吳禮泳)

349. 오의관(吳誼寬) -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면장(1937~40)
광복 후, 제2대 국회의원

350. 오정방(吳正邦) - 반도정신대
육군사관예비학교 교장(1946), 조선청년당 최고위원, 제1대 국회의원 입후보

351. 오청(吳晴) - 친일 경찰

352. 오현주(吳玄州) - 밀정,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대한애국부인회 밀고, 강낙원의 부인
광복 후, 안동교회 집사

353. ~경원(~慶源) - 임실경찰서 주임
전부경찰국 감찰관(1949)

354. 우하영(禹夏榮) - 읍장

355. 원덕영(元悳營)

356. 원병희(元丙喜)

357. 원의상(元宜常) - 중추원 참의, 전북도회 의원, 전주부회 의원, 녹기연맹 이사
원응상?

358. 원의상(元宜常) - 충남 부여군수, 천안군수



원은상 / 元殷常 - 추가
1949년 1월 체포




359. 원진선(元晋善)
원진희/元晉喜?

360. 위기철(韋基喆) - 중추원 참의

361. 유근수(劉根洙) - 대구경찰서 형사

362. 유명하(劉鳴河)

363. 유상호(劉尙浩) - 고등계 형사, 경부보

364. 유성식(劉成植) - 북부산경찰서 고등계주임

365. 유승이(柳承怡) - 서애 유성룡 선생 종손, 비행기 헌납, 병산서당에서 황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를 올림

366. 유시환(柳時煥) - 함경북도 참여관(1944)

367. 유연식(兪延植) - 충남 고등계 형사, 충남도회 의원

368. 유지창(柳志昌) - 충남 청양경찰서 고등계 형사

369. 유지훈(柳志勳) - 일진회 회원

370. 유진건

371. 유진후(兪鎭厚) - 부산남서 창립자, 고등계 형사

372. 유진흥(兪鎭興)

373. 유창무(柳昌茂)

374. 유철(劉撤) - 일본 헌병
광복 후, 성동 경찰서장, 종로경찰서장, 제주도 경찰국장

375. 유태설(劉泰卨) - 중추원 참의

376. 유홍순(劉鴻洵) - 강원도 지사, 만주국 민생청장, 임전보국대원
광복 후, 제헌국회 정부조직법 전문위원

377. 윤강노(尹强老) - 자작(윤덕영의 양손), 세브란스 병원 근무
1949년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심문을 받았으나,

378. 윤길중(尹吉重) - 전남 무안군수, 조선총독부 사무관, 고등문관시험 합격

379. 윤명술(尹命述) - 김해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삼화고무주식회사 사장비서

380. 윤사섭(尹赦燮)

381. 윤석원(尹錫元) - 목포경찰서 고문치사 관련
광복 후, 입법의원

382. 윤성길(尹成吉) - 고등계 형사

383. 윤의섭(尹毅燮) - 후작(윤택영의 후손)

384. 윤장섭(尹章燮) - 종로경찰서장, 황해도 경찰부장
광복 후, 교육자협의회 회장

385. 윤정현(尹定鉉) - 중추원 참의, 도평의원

386. 윤태빈(尹泰彬) - 강원 지사, 경북 지사, 함남 재무부장, 경기 참여관(1935)

387. 은성학(殷成學) - 전주경찰서 경부

388. 음경원(陰京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ㅅ

267. 서병조(徐丙朝) -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연맹 이사, 조선사상범보호관찰심사회 심사위원
268. 서병주(徐丙柱) - 중추원 참의, 도회 의원

269. 서승열(徐承烈) - 광주경찰서 고등형사, 광주학생사건 관련

270. 서영길(徐永吉) - 고등계 형사

271. 서영출(徐永出) - 경주경찰서장
광복 후, 경주 대동청년단 단장

272. 서용출(徐容出) - 고등계 형사

273. 석명석(石明석)

274. 성기자(成基子)

275. 성빈출(成賓出)

276. 성원경(成元慶)
예산 호서은행 지배인, 충남 제사회사 전무 취체역, 충남도 평의원, 충남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

277. 성정수(成禎洙) - 군수, 전남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278. 소진문(蘇鎭文) - 전라북도 평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의원, 임전보국단 의원, 거물면장

279. 손경수(孫景洙) - 전남 경찰부 경시, 구례군수

280. 손길동(孫吉童) - 경남 사천경찰서 사법형사(순사)

281. 손대용(孫大龍) - 고등계 형사

282. 손동하(孫東夏)

283. 손병헌(孫秉憲)

284. 손승덕(孫承德)

285. 손승억(孫承億)

286. 손영목(孫永穆)
고성군수, 동래 군수, 울산군수, 강원 참여관(1929). 경남 참여관(1931), 강원 지사(1935), 전북 지사(1937), 대화동맹 이사, 대의당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감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중추원 참의

287. 손영빈(孫永彬)

288. 손재하(孫在厦) - 영동주조주식회사 사장, 중추원 지방참의, 충북도회 의원, 국방헌금

289. 손필호(孫弼浩) - 목포경찰서 고등계형사, ML당 사건

290. 손홍원(孫弘遠) - 조선임전보국단 의원, 국민훈련후원회 회장

291. 송문헌(宋文憲) - 강원 참여관(1938), 함남 참여관(1940), 강원도 산업과장

292. 송문화(宋文華) - 중추원 참의, 평북 참여관(1941)

293. 송병우(宋秉愚)

294. 송병헌(宋秉憲) - 철원공립보통학교 고등과 졸업, 철원경찰서 고등계형사

295. 송상석(宋相錫) - 고등계 형사

296. 송세태(宋世泰)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대구세무서 관세계장(1949)

297. 송을용(宋乙用) - 대덕군 북면 면장
광복 후, 민주국민당 충남위원(1949)

298. 송이원(宋伊源) - 인천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김포경찰서장

299. 송재욱(宋在旭) - 헌병보조원, 괴사군 문광면장

300. 송종헌(宋鍾憲)
백작(송병준의 아들, 1925년 작위를 물려받음), 귀족원 의원, 중추원 참의(1921~33), 국민총력조선연맹 의원

301. 송희상(宋喜相) - 부의원 및 경방단

302. 시금혁

303. 신두주(申斗珠)

304. 신성균(申成均) - 전남 곡성면장
광복 후, 제헌 국회의원

305. 신순봉(申順奉)

306. 신영돈(申榮敦) - 철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순사)

307. 신옥(申鈺) -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평의원(1941)

308. 신용욱(愼鏞頊) -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 사장, 해군기 제작, 황민화 운동
광복 후, 대한국민항공사 KNA 설립, 2,3대 국회의원

309. 신원순(申元淳) - 강원 통천경찰서 순사

310. 신원영(申元榮) - 군산군 농회

311. 신원용(申元容) - 고등계 형사

312. 신탁욱(愼鐸욱)

313. 신태악(辛泰嶽) - 조선변호사회 부회장(1936), 조선임전보국단 이사(1941), 일본 중의원 의원 출마(1942)
광복 후, 대한국민당 선전부장(1949)

314. 신현구(申鉉求) - 중추원 참의

315. 신현규(申鉉奎) - 홍천 고등계 주임, 경부, 양구경찰서장, 강원도 경찰서 공안과장

316. 신현대(申鉉大) - 비행기 헌납

317. 실~원(失~元)

318. 심동국(沈東國) - 도의원
광복 후, 대한국민당 창립위원, 민주국민당

319. 심양체(沈良締) -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대한식량공사 경북지사장

320. 심의중(沈宜中) - 헌병보, 독립운동가 총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ㅂ

반민법에 따라 구속된 여성은 모두 6명에 불과했는데, 배정자는 이들 중 가장 먼저 구속된 사람이다. 
백원교 / 白元敎





215. 박경석(朴慶錫) - 중추원 참의, 평남도 평의원, 평양 북금융조합장, 평안고무공업사 취제역
216. 박기돈(朴基敦) - 강원도도회 의원, 총력연맹 이사

217. 박달수(朴達洙)

218. 박두영(朴斗榮)
중추원 참의(1937~45), 밀정, 일본육사 15기생(1903), 육군 대좌, (주)금강항공 고문, 민생단 단장(1932), 훈3등, 충북 반민 1호로 지목

219. 박병석(朴炳奭)

220. 박부양(朴富陽) - 자작(박제순의 아들, 1916년 습작)

221. 박부온(朴富溫)

222. 박서택(朴緖澤)

223. 박성갑(朴聖甲)

224. 박성용(朴聖用) - 순창경찰서 순사

225. 박세순(朴世純) - 고등경찰

226. 박소영(朴逍榮)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대한관찰부 군산지부장

227. 박순기(朴舜琪) - 경방단 광주지부 경호부장, 국민총력조선연맹 광주지부장, 조선방공협회 광주지부장

228. 박영규(朴永圭) - 정읍경찰서 순사

229. 박영진(朴永鎭) - 총력연맹 간부
광복 후, 기미독립선언기념 전국대회 준비위원

230. 박용옥(朴鏞玉)

231. 박용운(朴龍雲) - 고등경찰

232. 박용하(朴容夏) - 헌병보, 평남부회 의원

233. 박재홍(朴在洪) - 애화회 회장, 고등형사, 일선 공애회 간사
광복 후, 초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제3대 국회의원

234. 박정서(朴禎緖) - 남작(박승달의 손자, 작위를 물려받음)
광복 후, 신흥대학 교직원, 제2대 국회출마

235. 박정순(朴正純) - 용산, 김천경찰서 경부

236. 박종열(朴宗烈) - 중추원 참의

237. 박종옥(朴鍾玉) - 통영경찰서 고등계 형사, 이충무공 비문을 깎아 일본에 충성

238. 박종원(朴宗遠)

239. 박종표(朴鍾杓) - 대구헌병대 헌병보, 부산헌병대 헌병보, 헌병 병장
광복 후, 부산철도국 경비주임,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240. 박준영(朴駿榮) - 시중회 발기인

241. 박준표(朴準杓)

242. 박중양(朴重陽)
귀족원 의원, 중추원 참의, 고문, 부의장, 충남 지사(910), 황해지사(1921), 충북 지사(1921),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여, 임전보국단 고문, 훈1등,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

243. 박찬범(朴贊凡) - 후작(박영효의 후손, 1939년 작위를 물려 받음)

244. 박창수(朴昌洙) - 변호사

245. 박춘금(朴春琴) - 제국의회 중의원 의원, 노동상애회 당수, 대의당 당수, 대화동맹 이사
광복 후, 민단총본부 고문, 범~장 요정 운영

246. 박태익(朴泰益) - 함북 웅진경찰서 경부보

247. 박판수(朴判洙)

248. 박하종(朴河鍾) - 고등계 형사

249. 박흥식(朴興植)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대화동맹 이사, 흥아보국단 상무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조선비행기공업주식회사 사장, 동양척식주식회사 감사, 화신상사 사장, 대흥무역주식회사 사장, 조선총독부 물가원회 위원, 조선무역협회 이사
광복 후, 화신사장, 흥한재단 이사장, 광신학원 이사장, 호프만 미국 경제협조처장 방한시 한국대표(1949)

250. 박희도(朴熙道)
민족대표 33인, 시중회 회원, <동양지광> 창간, 국민총력 조선연맹 참사,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251. 박희옥(朴禧沃) - 중추원 참의, 전북도 평의원

252. 방규환(方奎煥) - 경성부 협의회 의원, 만주국 밀정
광복 후, 실업동지회 회장

253. 방의석(方義錫) - 중추원 참의, 북선교통회사 설립(함흥), 애국기 2대 헌납,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254. 방철록(房鐵錄) - 고등계 형사

255. 배국인(裵國仁) - 부회 의원

256. 배기영(裵基英)

257. 배만수(裵萬壽) - 고등계 형사

258. 배상기(裵相기) - 남해경찰서 순사, 합천경찰서 순사부장

259. 배상빈(裵相斌)

260. 배영덕(裵永悳) - 대구부회 의원

261. 배용표(裵容杓)

262. 배정자(裵貞子) -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밀정, 무장첩보단체 보민회 발기인, 조선총독부 경무국 촉탁

263. 배종덕(裵鐘德) - 백작으로 보도(오류로 추정)

264. 배황수(裵晃洙) - 고등계 형사

265. 백낙승(白樂承)
(박흥식과) 군수공장 경영, 조선문연탄 제철회사, 강원도 조선철강회사, 비행기 헌납
광복 후, 태창직물 사장

266. 변설호(卞雪湖) - 합천 해인사 지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ㄴ,ㄷ,ㅁ

185. 나양금(羅良金)
186. 나인국(羅寅國)

187. 나지강(羅智綱) - 군수

188. 남무호(南武鎬) - 고등계 형사

189. 남장희(南章熙) - 남작(남연철의 상속인, 1916년 작위를 물려 받음)

190. 남주희(南周熙) - 고등계 형사

191. 남학봉(南學鳳) - 경부, 경북 경찰관

192. 노기주(魯磯柱)
경북 위상과 경부보 특채(사법계 주임), 경주 경찰서 사법주임, 선산 경찰서 사법주임, 경시, 경북 경찰부 경찰강습소 교수, <조선어법상해(朝鮮語法詳解)> 집필, 경시로 경남, 경북 보안과장
광복 후, 군정청 경찰부장, 부산 도기회사 관리인

193. 노덕술(盧德述)
동래 경찰서 사법주임, 통영경찰서 사법주임, 평안남도 보안과장, 훈7등 종7위
광복 후, 서울시경 총경, 헌병 중령(1950), 육군범죄수사단 대장(1955)

194. 노세윤(盧世胤) - 서울본정 경찰서 경부, 경위, 황해도 보안과장

195. 노영환(盧永奐)
경남 창녕군 면장, 경남도 평의원, 금융조합장, 중추원 지방 참의, 경남도회 의원, 은제화병 수여
광복 후, 중등공민학교 설립

196. 노준영(盧俊永)

197. 도헌(都憲) - 부산 수산경찰서 고등계 형사

198. ~진회(~盡會) - 헌병보조원

199. 문귀우(文龜祐) - 건국동맹사건 담당 고등계형사

200. 문귀호(文龜鎬) - 고등계 형사

201. 문명기(文明琦)
중추원 참의, 황도선양회장, 비행기 헌납, <조선신문> 사장, 국민총력연맹 위원, 임전보국단 위원

202. 문용호(文龍鎬) -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203. 문원보(文源甫) - 고등계 형사

204. 문원식(文元植)

205. 문재철(文在喆) - 전남도회 의원(1930~1935), 흥아보국단 전남 도의원,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206. 문종구(文鍾龜) - 중추원 참의

207. 문종중(文宗仲) - 전남도 경찰부 순사, 광주서중 사건 지휘

208. 문헌호(文憲浩)

209. 민대식(閔對植)

210. 민난기(閔蘭基)

211. 민병덕(閔丙德)
중추원 참의, 황해도회 의원, 임전보국단 의언, 흥아보국단 황해도위원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212. 민병억(閔丙億) - 남작

213. 민영찬(閔永瓚) - 대한제국 프랑스 주재 공리, 중추원 참의, 
광복 후, 한불문화협회 고문

214. 민홍기(閔弘基) - 자작(민병석의 아들, 1940년 작위를 물려받음), 중추원 참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ㄱ Part 02

42. 김갑복(金甲福) - 국민총력조선연맹 청주지부 이사장, 청주경방단 부단장
43. 김갑순(金甲淳)
충남도 감사(1914), 충남도 평의원(1920), 중추원 참의(1923~1929),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임전보국단 이사
광복 후, 단군성적호유회 회장

44, 김경진(金慶鎭) - 중추원 참의,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광복 후, 과도정부 재무국장, 상공위원회 위원

45, 김경태(金慶泰) - 고등계 형사

46. 김광호(金光浩) - 경남도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경남도 경찰청 총무과장

47. 김규만(金奎晩)

48. 金奎면

49. 김균희(金均熙)

50. 김극일(金極一) - 황해도 형사과장, 조선총독부 근무, 조선어 시험위원

51. 김금술(金今述) - 모리배, 비행기 헌납
광복 후, 사일상업 사장

52. 김기대(金箕大) - 황해도 군수, 참여관

53. 김기수(金基秀) - 중추원 참의, 흥아보국단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국민총력연맹 이사

54. 김기옥(金基玉) - 우가키 총독의 양자, 독립군 토벌 대통역인, 고등계 형사

55. 김기용(金琦鎔)

56. 김기진(金基鎭) -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결성위원,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광복 후, 경향신문 주필, 한국문회협회 고문

57. 김기홍(金基鴻) - 중추원 참의

58. 김길창(金吉昌)
항서교회 목사, 교인의 황민화 운동, 신사참배운동 등 추진, 경남노회장
광복 후, 1945∼1960년 부산기독교연합회장을 여섯 차례 역임, 1945∼1967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 설립이사장, 1961∼1962년 한국기독교연합회장, 1962∼1968년 장로회경남노회 학교법인 금성학원·건국학원 및 창신학원의 이사장 및 이사, 1962년에는 부산연합신학교를 설립하여 교장 및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47년 정부로부터 교육공로자상을 받았으며, 1963∼1965년까지 부산기독교학교연합회장을 역임하였다

59. 김달호(金達浩)

60. 김대우(金大羽)
박천군수(1928), 전남 참여관(1939), 경남 참여관(1940), 중추원 참의, 전북지사(1943), 경북지사(1945),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황국신민사 창시자

61. 김대형(金大亨) - 고등계 형사, 의병장 이석용 등 체포

62. 김덕기(金悳基) - 평북 고등과장 경시, 도이사관, 평북 참여관(1942), 경남 참여관(1943)

63. 김덕삼(金德三) - 황해도 장연군 전택면 면장(1939)

64. 김덕수(金德秀)

65. 김덕홍(金德弘) - 독립운동가 밀고
광복 후, 군정청 경부

66. 김도식(金道植) - 순천경찰서 고등계 형사

67. 김동(金東)

68. 김동만(金東滿) - 목사, 신사참배 선창자

69. 김동우(金東佑) - 전남 지도군수(1909), 군대해산에 앞장, 전남 무안 군수(1924)

70, 김동준(金東準) - 전남 광양군수, 전남 이사관(1921), 중추원 서기관(1923~4), 진주군수(1928), 구례군수(1924), 중추원 참의

71. 김동진(金東鎭) - 매일신문 전무

72. 김동현(金東顯) - 강원도 고문왕

74. 김동환(金東煥)
시인, 대동아(전 삼천리) 사장,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임전보국단 상무이사, 국민총동원총진회 이사
광복 후, 연합국감사국민대회 준비위원, 한민당 발기인, 대한청년단 충북단장, 대한국민당 위원

75. 김두원(金斗月) - 경북도청 근무, 황민화 운동

76, 김두읍(金斗邑)

77. 김두길(金斗吉) - 동화백화점 관리인

78. 김두하(金斗河)
포항읍회 의원, 도 평의원, 관선 도회 의원, 영일군 국방의회 회장, 일황 2600년 기념대회 기념 장수, 수리조합 이사, 비행기 헌납금 납부

79. 김맹철(金孟鐵) - 밀양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경남 함양경찰서 서장

80. 김문주(金文周) - 광주경찰서 고등형사, 광주학생 사건 관련

81. 김병기(金丙起) - 경부, 고문치사로 유명
광복 후, 강원도 경찰군 감사관(1949)

82. 감병년(金炳年)

83. 김병욱(金秉旭) - 중추원 참의, 조선총독부 학무국, 내무국 근무
재일본 거류민단 내무국장

84. 김병태(金炳泰)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강원도 춘천 고등계 형사(1949)

85. 김봉생(金鳳生) - 영천경찰서 사법주임

86. 김부일(金富一) - 영천경찰서 사법주임

87. 김사연(金思演) - 중추원 참의

88. 김상규(金尙圭) - 헌병보

89. 김상길(金尙吉)

90. 김상석(金商奭)

91. 김상형(金相亨) - 중추원 참의

92. 김상홍(金相洪)
경상남도 학무관 시학, 거창면 사무주임, 부산부회 의원, 경남 관선 도회 의원, 부산부사회 계장, 훈8등공로훈장

93. 김석기(金奭基) - 남작(김사철에게 1935년 작위를 물려 받음)

94. 김석기(金錫起) - 고등계 형사

95. 김성범(金成範) -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

96. 김성엽(金成燁)

97. 김세현(金世顯) - 남작(김종한의 장자, 1932년에 작위를 물려 받음)

98. 김수룡(金守龍)

99. 김순녕(金淳寧)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대한청년단 위원

100. 김술(金述)

101. 김숭오(金崇吳)

102. 김승범(金承範) - 고등계 형사

103. 김승수(金承洙) - 중추원 참의

104. 김시권(金時權)
경원군수(1914), 함북내무과장(1922), 함북재무사무관(1928~29), 경북 참여관(1932~1935), 전북지사(1935), 강원지사(1937), 임전보국단 상임위원

105. 김~모(金~募) - 고등계 형사

106. 김억근(金億根) - 도회 의원, 학병권유 및 황민화 운동

107. 김연수(金䄵洙)
경기도 관선의원(1933), 조선사업경제조사회 위원(1936), 애국기헌납기성회 발기(1937), 서울주재 만주국 명예 총영사(1939), 중추원 참의(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1940), 조선임전보국단 이사(1941),
광복 후, 한국경제협의회 초대 회장, 삼양사 회장, 고려학원 이사, 중앙학원 이사

108. 김영기(金榮基) - 고등계 형사

109. 김영래(金榮來)

110. 김영무(金英茂) - 부의원 및 경방단

111. 김영택(金榮澤)

112. 김영호(金永浩) - 종로경찰서 고등계 차석, 송진우, 여운형 등 체포
광복 후, 대한청년단, 제2대 국회의원 출마

113. 김영환(金永煥) - 일제 판사, 훈5등급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대한국민당

114. 김영환(金英煥) - 목사, 밀정

115. 김옥현(金玉鉉) - 광주경찰서 고등형사, 광주 학생사건 관련
광복 후, 대한청년단 인천시단부 건설부장

116. 김온준(金溫濬) - 독립운동가 밀고

117. 김용근(金龍根) - 평북 노무과장, 기타 군수
광복 후, 상공부 광무국장(1949)

118. 김용래(金溶來) - 고등계 형사

119. 김용업(金龍業) - 고등계 형사(경시)

120. 김용우(金龍禹) - 고등계 형사, 대동일진회 이사장

121. 김용운(金龍雲) - 고등계 형사

122. 김용제(金龍濟) - 동양지광 주필 겸 편집장,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
광복 후, 새벽 편집국장, 흥사단 이사

123. 김용학(金龍學)

124. 김우영(金宇永) - 김제경찰서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삼선시멘트공장 운영

125. 김우영(金雨英) - 중추원 참의, 충남 참여관(1940), 국민총력연맹 충남고문
광복 후, 변호사(1949), 제2대 국회의원 출마

126. 김원근(金元根) -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위원, 비행기 헌납, 충북도회 의원, 청주상과대학 설립
광복 후, 충북대학 설립 준비

127. 김원렬(金元烈) - 평양경찰서 고등계 형사

128. 김유성(金有聲) - 부의원 및 경방단원

129. 김~관(金~關)

130. 김윤복(金允福) - 관선 경기도회 의원, 중추원 참의
광복 후, 인천경찰서장

131. 김응두(金應斗) - 보도위원
광복 후, 조선국민당 위원

132. 김익권(金益權) - 해주경찰서 고등계 형사(경시)

133. 김인봉(金仁鳳) - 광주학생사건 시 고문치사

134. 김인선(金仁善) - 목사, 신사참배 선창자

135. 김인영(金仁泳) -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 수원 경찰서장, 안성 경찰서장, 춘천 경찰서장, 서대문 경찰서 보안주임

136. 김익준(金益濬)

137. 김임술(金任述)

138. 김재덕(金在悳) - 고등계 형사

139. 김재실(金在實) - 순사, 황민화운동의 공로로 도지사상

140. 김재홍(金在洪) - 고등계 형사

141. 김재환(金在煥) - 중추원 참의, 경북도회 의원

142. 김정~(金正~)

143. 김정대(金正大) - 김해경찰서 고등계 형사

144. 김정록(金正祿) - 남작(할아버지: 김춘희(전 이조참판)아버지: 이교필, 1932년에 작위를 물려 받음)

145. 김정배(金正培)

146. 김정택(金貞澤) - 전남도경찰부 광주서중사건 지휘

147. 김정한(金正翰)

148. 김정호(金正浩)
중추원 참의, 평안남도회 의원, 평양부회 의원, 총력연맹 이사, 송고실업장(군수복 피복 헌납), 항공업자

149. 김종석(金種錫)

150. 김주현(金周鉉)

151. 김지창(金志昌)

152. 김진규(金鎭奎) - 경찰학교 교장

153. 김진기(金眞基) - 황해도 고등형사과장, 오동진 선생 체포자

154. 김진수(金晉洙) - 중추원 참의

155. 김진옥(金珍玉) - 고등계 형사

156. 김찬욱(金燦旭) - 경부, 평북 의주경찰서 사법 주임, 철원군수

157. 김창규(金昌奎) - 고등계 형사

158. 김창수(金昌洙) - 고등계 형사

159. 김창영(金昌永)
강원도 경부보(1922), 경시(1930), 금산군수(1933), 만주국 치안 부이사관, 전남 참여관 겸 산업과장(1943), 광공부장

160. 김창준(金昌俊) - 조선임전보국단 의원
광복 후, 독촉국민회 선전부장

161. 김창집(金昌集) - 이여식 목사 밀고

162. 김태두(金泰斗) - 도의원

163. 김태석(金泰錫)
중추원 참의, 경기도 경부(1913), 경시(1920), 형사과장(1920), 가평군수(1924), 고등계 형사, 임전보국단 위원, 국민총력연맹 위원, 총독부 참여관, 함남 참여관(1933), 경남 참여관(1939)

164. 김태섭(金台燮) - 애국지사 박해
광복 후, 국민회장(1949)

165. 김태훈(金泰勳) - 징용후원회장, 경방단 간부, 부회의원

166. 김팔생(金八生) - 고등계 형사

167. 김피득(金彼得)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한민당 발기인

168. 김필순(金弼淳) - 목사, 비행기 헌납
광복 후, 무학여고 교장

169. 김하섭(金夏涉) - 중추원 참의, 함흥도회 의원

170. 김학일(金學日)

171. 김한녕(金漢寧)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대한청년단 훈련부장

172. 김한승(金漢昇) - 중추원 참의, 전남 도의원

173. 김현(金赫) - 충남 아산면 면서기, 면농회장, 류광열 밀고

174, 김현동(金顯東) - 고등계 형사

175. 김형기(金亨起) - 고문치사로 유명한 고등계 형사

176. 김형익(金衡翼) - 해주부회 의원
광복 후, 서울시의사회 회장, 대한의학협회 이사장

177. 김형진(金亨鎭) - 고등계 형사
광복 후, 용산경찰서 서장

178. 김호규(金虎圭) - 자작(김성근의 아들)

179. 김호말(金虎末)

180. 김화준(金化俊)
대한제국 농상공부 기수, 평남 서기 등 8개군 군수 역임, 충북 참여관(1938), 도 산업부장, 훈 4등 종4위 받음, 중추원 참의
광복 후, 대한산림회 연합회장

181. 김환인(金煥仁) - 고등계 형사

182. 김흥배(金興培) - 경성부회 의원, 육군피복공장 운영
광복 후, 한국화재보험회사 취체역

183. 김희규(金喜圭) - 목포경찰서 고등계 형사, 군수

184. 김희옥(金喜玉)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소환된 자 명단 x675 - ㄱ Part 01

1. 강낙석(姜洛錫)

2. 강낙원(姜樂遠) - 밀정, 비밀결사 대한애국부인회 밀고, 오현주(吳玄州)의 남편
광복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부장

3.강낙중(姜洛中) - 진주 고등계 형사

4. 강보형(姜寶馨) - 전북 순사교습소장, 진주경찰서 경부
광복후, 충남, 충북 경찰청장

5. 강석조(姜錫祚) - 제주도 경찰서 순사부장

6. 강성순(姜聖純) - 고등계 형사

7.강세항(姜世항)

8.강용달(姜用達)

9. 강우형(姜于형) - 헌병 밀정

10. 강정방(姜正邦)

11. 강제호(姜濟鎬) - 광주노무자 징용사건 관련

12. 강진하(姜鎭河) - 독립운동가 밀고

13. 강태규(姜泰葵)

14, 강태석(姜泰錫) - 김태석 허위증거로 옹호

15. 고흥(高興) - 중추원 참의

16. 고봉인(高鳳仁) - 고등계 형사

17. 고운덕(高雲德)

18. 고원훈(高元勳)
중추원 참의, 총독부 경부(1911), 전북지사(1932), 전남, 경북, 평남북, 경기 참여관, 임전보국단체장, 국민총력조선연맹 간부, 대화동맹 심의원, 대의당 간부

19. 고일정(高一睛) - 중추원 참의, 임전보국단 이사(1941), 조선사상범 보호관찰 심의회 예비의원

20. 고졸부(高卒富) - 제주도 경찰서 순사

21. 고중민(高重敏) - 백작

22. 고창항(高昌恒)

23. 고한승(高漢承) - 중추원 참의, 송도항공기 회사 사장, 개성 경방단 단장, 비행기 헌납

24. 고희경(高喜京) - 독립운동가 밀고(이여석 등)

25. 공린수(孔麟秀) - 영광경찰서 순사

26. 곽정식(郭政植)

27. 구명현(具明현)

28. 구성주(具盛周)

29. 구자경(具滋璟)
해남경찰서 경부(1917), 전남 보안과장(1924), 영광군수(1929), 장흥군수(1931), 순천군수(1932), 경북 참여관(1939)

30. 권갑중(權甲重) - 수원군수

31. 권녕훈(權寧薰) - 경북도회의원,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위원

32, 권상로(權相老) - 친일 승려,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광복 후, 동국대학교 총장

33. 권상호(權相鎬) - 밀정

34. 권세윤(權世允) - 밀정

35. 권승열(權承烈)

36. 권오묵(權五默) - 고등경찰

37. 권오연(權五然) - 인천 경찰서, 경기 경찰부 고등계형사

38. 權장夏

39. 김영주(琴永柱) - 영동경찰서 순사

40. 금예주(琴禮柱)

41. 길전방자(吉田芳子) - 반민피의자 박재홍의 처

2022년 6월 13일 월요일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ㅎ

하천청
하학수
한경원
한규영
한기동
한동기
한명균
한 무
한민제
한민헌
한백순
한병규
한병호
한여신
한영섭
한용락
한용래
한우권
한응보
한일룡
한정일
한 찬
한창원
한충손
한태권
한태길
한태섭
한풍만
한한영
한형기
한 흥
허광윤




허기락 / 許基洛
창씨개명 : 岩村 基洛 / 이와무라 기라쿠
(1903년 12월 29일 - ?)
간도협조회 본부 교양부장





허기열 / 許基烈
(1907년 4월 17일 - ?)
간도협조회 본부 특별공작대 돈화현 공작대원


허기훈



허동수
(? - ?)

허영수
허영환
허 익
허 일
허일권
허장룡




허진성 / 許鎭星
(1912 - ?)
간도협조회 본부 특별공작대 대원



허 호
허 활
허흥준
현규봉
현시달
현용지
홍병수
홍상린
홍석호
홍성우
홍세헌
홍순철
홍승훈
홍융명
홍종구
홍찰범
환운흥
황도현
황동식
황룡수
황성학
황치부
황학선
황호현
황희근
황희수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ㅊ,ㅌ

차거화
차익준
차창권
차청룡
채규오
채병묵
천재춘
최강철
최경선
최고현
최관정
최규진
최기남
최기형
최길상
최대관
최덕해
최동륜
최두남
최만충
최명덕
최명준
최미길
최배천
최병규
최봉욱
최상설
최상진
최석근
최석환
최선경
최세규
최송길
최수길
최순일
최영길
최영찬
최영태
최영혁
최용근
최우천
최운칠
최 웅
최웅남
최원탁
최 윤



 
최윤주 / 崔允周
창씨개명 : 宮竹謙輔
(1887년 1월 27일 - 1969년 9월 11일)
간도협조회 본부 고문



최의풍
최인길
최일능
최입원
최재홍
최정규
최정옥
최정익
최정일
최준태
최진남
최찬근
최창극
최창락
최창순
최창옥
최창주
최창준
최창협
최철룡
최철학
최치도
최치봉
최태욱
최 헌
최현삼
최형근
최호봉
최홍빈
태봉일
태영수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ㅈ

장갈성
장경화
장기환
장남해
장달화
장두성
장문재
장문화
장순봉
장우형
장윤경
장제선
장지량
장학수
장학철
전극일
전상룡
전영우
전영표
전 일
전재덕
전진국
전창식
전태선
전학철
전화헌
정경찬
정광해
정국동
정기영
정기해
정길중
정남섬
정노해
정라술
정만길
정병칠
정운복
정을선
정인옥
정인혁
정재봉
정재황
정진경
정진영
정창석
정춘환
정태옥
정태청
정해붕
정현철
정희천
조기연
조만기
조만춘
조명선
조연응
조운서
조을선
조종훈
조효중
종일현
주권덕
주 림
주시덕
주인돈
주인동
주인찬
주형산
주 화
지상종
지성삼
지외룡
지장손
지하연
지하영
진영팔
진종환
진진옥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ㅇ Part 02

이갑녕
이갑장
이경란
이경세



이경재 / 李庚在
(1880년 음력 7월 16일 - ?)
1931년에는 간첩 조직인 민생단이 조직될 때 발기인을 맡았다.



이경재2
이계용
이근선
이근식
이근영
이금석
이기수
이기용
이기태
이길봉
이길선
이달순
이덕선
이덕준
이동빈



이동성 / 李東成
(1872년 음력 9월 17일 - ?)
보민회 통화지부장
통화조선인민회회장
한교동향회 회장



이동필
이동하



이동화 / 李東華
(1911 - ?)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대



이두명
이만기
이명춘
이명환
이문규
이문용
이문의
이문호
이민호
이배성
이범락
이병문
이봉권
이봉남
이봉운
이상헌
이선현
이성구
이성화
이세현
이수봉
이시일
이식영
이영근
이영길
이영선
이영수
이영순
이영일
이영학
이오익
이완구
이완룡
이용국
이용로
이용향
이우민
이 욱
이웅이
이원호
이윤길
이윤섭
이은준
이은학
이인섭
이인수
이일봉
이자식
이재익?!?
이재춘


이 정 / 李 楨
(1895년 - 1943년)
김좌진 장군 비서


이정갑
이정식
이정원
이종규
이종길
이종락
이종익
이종태
이종학
이종홍
이죽파
이준성
이준열
이중옥
이지춘
이지하
이진옥
이창민
이창엽
이창운
이창화
이천신
이철학
이청산
이 춘
이춘근
이충근
이치문
이칠성
이태서
이태준
이판안
이필순
이필홍
이하수
이학춘
이현우
이호준
이희간
이희형
임경섭
임경희
임 곡
임광석
임규상
임동규
임서약
임서학
임영준
임우종
임재춘
임창일
임향림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ㅇ Part 01

안갑용
안경동
안기백
안동섭
안석기
안용순
안용정
안태훈
안필헌
안형섭
안훈철
양기현
양덕산
양동현
양량옥
양복동
양복리
양석환
양영희
양진길
양진청
양춘제
엄계력
엄금석
엄기동
엄노섭
엄대호
엄득일
엄석인
엄세화
엄을룡


 
엄인섭 / 嚴仁燮
(1875년 - 1936년)
러시아지역 밀정 :  1920년 "간도 15만원 사건"


여경휘
여윤범
염면홍
염익지
오덕수
오덕윤
오성룡
오성륜
오약진
오인근
오인묵
오정순
오종원
오창걸
오치춘



오현주 / 吳玄州
(1894년 2월 29일 - 1989년)
밀정 : 대한애국부인회 밀고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광복 후, 안동교회 집사



왕현정
왕홍삼




  
우덕순/ 禹德淳 (우연준(禹連俊)
(1876년 - 1950년 9월 26일)



우상기
우치삼
원경상
원근명
원용건
원용덕
원용익



원정환 / 元正煥
(? - ?)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대



원종명
원충희



원치상 / 元致常
(? - ?)
간도협조회의용자위단 단장



원한준
원혜봉
유광순
유길선
유두익
유민삼
유석현
유익겸
유인발



유중희 / 柳重熙
(1904년 7월 15일 - 1937년 5월 자결)
간도협조회 본부 조직부원 겸 통역계원
간도협조회 본부 특별공작대 부대장



유찬빈
유창범
유촌규
유학로
육상태
윤달수
윤대영
윤병하
윤봉섭
윤산천



  
윤상필 / 尹相弼
창씨개명 : 伊原相弼 또는 尹原相弼
(1887년 7월 8일 - 하바롭스크 굴라크에서 사망)
만주국 협화회의 본부이사



윤성세
윤영복
윤일병
윤자록
윤자명
윤자성
윤창언
윤충렬
윤치은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ㅅ

사장원
사태현
서상구
서상룡
서상용
서석초
서영선
서영춘
서영희
서완산
서 초
서춘당
서춘종
석성환



석현구 / 石鉉九
(? - ?)
중국 관내 밀정



선우갑 / 鮮于甲
(1893 - ?)
중국 안동현 헌병분대 밀정



성기일
성문석
손서헌
손승국



손지환 / 孫枝煥
(1910년 7월 3일 - ?)
간도협조회 본부 부회장



 
손창식 / 孫昌植
창씨개명 : 孫田昌植
(1906년 11월 8일 - 1979년 4월 16일)
상해계림회 이사장
일본영사관과 일본군 부대, 특무기관 등과 밀착하여 일종의 밀정 활동을 수행한 단체





송관홍
송기손
송기옥
송기종
송기환
송도여
송도흥
송두후
송병두
송병원



  
송세호 / 宋世浩
(1893년 8월 9일 - 1970년 6월 13일)
위안소로 추정되는 ‘극동 댄스홀’ 경영

송의봉
송재선
송제득
송주경
송헌철
신경운
신명균
신석방
신선학
신용헌
신종석
신좌균
신창희
신충렬
신태현1
신태현2
심병남
심신언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270399_28802.html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719015004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ㅂ

박감상
박건한
박경명
박경성
박경순
박경악
박광서
박규명
박균섭
박기선
박노천
박덕린
박덕순
박동규
박동근
박두남
박득범
박락현
박래천
박로환
박병국
박병봉
박병일 = 려시아?
박봉순
박상갑
박상과
박상관
박상진
박석윤
박성민
박순보
박순일
박순필
박승벽
박승선
박승필
박승호
박영길
박영진
박완구
박용묵
박용철
박용환 = 러시아?
박운경
박원식
박원효
박유병
박윤권
박은양
박응칠
박의병
박이규
박인순
박장훈
박정삼
박정선
박제간
박제건
박제경
박재현
박준근
박진조
박창근
박창림
박창해
박춘겸
박춘섭
박치겸
박치경
박태옥
박학만
박한경
박화계
박화상
박환일
박황희
박흥건
방두성
방리환
방만영
방수현
방진교
방 훈
배상렬
배영준
백규삼
백락삼
백원장
백진언
변명규
변영서
부영청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ㄴ,ㄷ,ㄹ,ㅁ

남규강
남복명
님성률
남승범
남희철
노중산
도용해
도 헌 - 경찰!?
동섭포
라청송
마문막
모정풍
문종수
민영헌
민원식
민하연
민학식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ㄱ Part 02

김갑명 - 친일단체?
김강림
김경렬
김경률 - 중국만주?
김경선1
김경선2
김경연
김경준
김경호 - 친일단체? 중국만주?
김경희 - 관료?
김공엽
김관일
김 광
김광련
김광준
김광추
김교익
김규동
김극전
김기양
김기욱
김기조 - 경찰? 사법?
김기준 - 관료?
김기충
김기형
김기홍 - 관료? 중추원?



김길준 / 金吉俊
(1899 - ?)
간도협조회 본부 서무부장


김길춘



김남길 / 金南吉
(1910 - ?)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대


김내범
김달문
김달준



김달하 / 金達河
(? - 1925년 3월30일)
조선의용대 총무조장 리집중(본명 이종희). 리집중은 의열단원으로 북경에서 김창숙, 류자명의 지시를 받고 밀정 김달하(이대 총장 김활란의 형부)를 처단한 인물이다.



김대원
김대형
김덕기 - 경찰?
김덕삼1
김덕삼2
김덕형
김도순
김도영
김동대



김동열 / 金棟烈 (김동열 / 金東烈)
(1912년 10월 26일 - 1948년 6월 26일)
간도협조회 본부 공작원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대 지휘관



김동주



 
김동한 / 金東漢
(1892년 10월 8일 - 1937년 12월 7일)
간도협조회 본부 회장



김동환



김동훈1 / 金東勳
(? - ?)
간도협조회 의용자위단 지도관



김동훈2
김두천 - 관료? 친일단체?
김래봉
김리구- 중국?
김만수
김명균
김명렬
김명복
김명인
김명진 - 친일단체?
김명집 - 친일단체?
김명춘
김문근
김문협
김문호
김민구
김민용
김방혁
김병건 - 중국?
김병규 - 친일단체?
김병수1
김병수2
김병옥
김병우
김병헌
김병호
김병희
김보현



김 복 / 金復 (김규흥 / 金奎興)
(1872년 6월 13일 - 1936년 8월 16일)
독립운동가



김봉국
김봉래
김봉선
김봉섭
김봉수
김봉순
김봉재
김봉호
김봉활
김사훈
김상률
김상범
김상섭
김상필1
김상필2
김상헌
김생려
김서방
김석룡
김석충
김석필
김석홍
김선옥
김성곤
김성룡
김성린
김성민
김성오
김성욱
김성준
김성천
김성철
김성하
김성학
김세윤
김세진
김소달



김송열 / 金松烈
(1902년 9월 22일 - 1946년)
간도협조회 조직부장
간도협조회 본부 특별공작대 대장



김수근
김순열
김 승
김승로
김승환
김시준
김시철
김양천
김연욱
김연정



김연하
(? - ?)

김 열
김영건
김영길
김영배
김영복



김영수 / 金榮秀
(1907년 2월 6일 - 1946년)
간도협조회 본부 서무부장 및 선전부장, 통역계 주임



김영식
김영주
김영천
김영철
김영춘
김영호
김옥만
김완태
김용국
김용규
김용문
김용범
김용봉
김용식1
김용식2
김용욱
김용하
김우건
김우조
김우택
김우현
김운보
김웅이
김원순
김원철
김유복
김유영
김윤규
김윤신
김윤옥
김윤집
김윤택
김응룡
김응문
김응실
김이수
김이원
김이출
김 익
김인만
김인순
김인승
김인희
김일룡
김장현
김장희
김재룡 / 金載龍
김재범
김재수
김재영
김재원
김재윤
김재헌
김재홍
김재희
김 정
김정국
김정규
김정률
김정엽
김정우
김정태1
김정태2
김정한
김정희
김제형
김종락
김종린
김종성
김종원1
김종원2
김종진
김종하
김종헌
김주석
김주홍
김준근
김준명
김준현
김중익
김중화
김지섭
김창범
김창성
김창욱
김창원
김창주
김창화
김창희
김천룡
김 철
김청현
김춘수
김충록
김취일
김치극
김치만
김치범
김태석
김태선
김태주
김택룡
김 파
김 평
김하구
김하근
김하석
김하성
김하정
김하청
김학권
김학로
김학룡
김학린
김학문
김한표
김행규
김형식
김형태



김 호 / 金 浩 (김재영)
(? - ?)
의열단원 : 김원봉 밀고



김화룡
김황상
김흥국
김흥수
김희열
김희영

KBS 밀정 혐의자 895명 확인 - ㄱ Part 01

강현묵 / 姜鉉默 (강현묵 / 姜鉉黙) (강경팔 / 姜京八)
(1908년 6월 29일 - 1947년 6월)
간도협조회 본부 공작원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대 지휘관



강금철
강동락



강락원 / 강낙원 / 姜樂遠
(? - ?)
밀정 : 대한애국부인회 밀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부장



강문백
강문형
강병철
강봉현
강석호
강선장
강영화
강용만
강준수
강진한
강창호
강택규
강필경
강한말
강한수
강해범
계덕필
계승호
고병결
고병택
고성오
고성환1
고성환2
고운학
고진화
곽봉산
권봉수
기병연

2022년 6월 9일 목요일

간도 / 間島

간도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만주국 / 滿洲國의 간도성 / 間島省은
연길현 / 延吉縣
왕청현 / 汪淸縣
화룡현 / 和龍縣
안도현 / 安圖縣
훈춘현 / 琿春縣을 포괄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 길림성 / 吉林省의 연변조선족자치주 / 延邊朝鮮族自治州는
위의 간도성 / 間島省 영역에 돈화현 / 敦化縣 지역이 추가되어 있다.

2022년 6월 6일 월요일

귀족 추가?

김용국 / 金容國 (김우현 / 金宇顯)
창씨개명 : 光山 宇顯 / 미츠야마
(1920년 8월 10일 - ?)
김영철 손자



덕혜옹주
출처 : wiki



이덕주 / 李德柱
(1887년 6월 28일 - 1962년 11월 7일)
이해창 장남




이병주 / 李丙周
(1913년 6월 20일 - 일본귀화)
이항구 차남, 이완용 손자



이 주 / 李 鑄
(1917년 2월 13일 - 1982년 12월 10일)
이인용 양자



영선군 이준용
이재면 습작?



조원세 / 趙源世
(1920년 6월 12일 - 2002년 3월 5일)
조동희 증손자

2022년 6월 4일 토요일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 지원병자 x70

1948년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냈던
김승학이 작성한 원고에 기재된
친일 인사 263명에 관한 명단- 지원병자 x70



지원병자 (36명)
이수우 (李壽宇)
김근창 (金根昌)
김주석 (金柱錫)
유영복 (劉永福)
김칠수 (金七洙)
김광수 (金光洙)
이용성 (李龍星)
김병순 (金秉淳)
청목무 (靑木茂)
김성덕 (金聖德)
이지봉 (李之鳳)
오인상 (吳寅象)
최병옥 (崔炳玉)
정선영 (鄭先永)
김기창 (金起昌)
김정수 (金正秀)
허인구 (許印九)
김도근 (金道根)
윤철모 (尹哲模)
정병두 (鄭炳斗)
김용인 (金容仁)
송문식 (宋文植)
이영우 (李英雨)
하공식 (河公植)
이종정 (李鐘亭)
임병선 (林炳善)
조순용 (趙順容)
윤시숙 (尹時淑)
김대진 (金大鎭)
최정낙 (崔程洛)
오재춘 (吳在春)
김종만 (金鍾萬)
이병윤 (李炳潤)
김종규 (金宗圭)
외삼오각 (外三五各)
조병묵 (趙秉黙)



지원병 혈서 지원자 (34명)
손복희 (孫福熙)
서원순광 (西原順光)
송원규희 (宋原奎喜)
해원삼절 (海原三節)
김전승환 (金田昇丸)
현무기완 (玄武磯完)
신농철수 (新農鐵秀)
박용해 (朴龍海)
청수홍석 (淸水弘錫)
장병학 (張炳學)
암본종조 (岩本鍾詔)
박용석 (朴容錫)
옥산광랑 (玉山光郞)
복전수창 (福田秀昌)
무평충웅 (武平忠雄)
남인수 (南仁樹)
김중환 (金重煥)
허만학 (許萬鶴)
송원주훈 (宋原柱薰)
신목부차랑 (新木富次郞)
산본규순 (山本圭淳)
무원병권 (武源炳權)
백년설 (白年雪)
길전청작 (吉田淸作)
죽림객승 (竹林客承)
평산기범 (平山基範)
신생창근 (新生昌根)
대촌희명 (大村熙明)
해본의웅 (海本義雄)
김동은 (金東殷)
백정재정 (白井載貞)
박향림 (朴響林)
연규홍 (延奎弘)
송본원영 (宋本元榮)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 다액 국방금 헌납자 x36

경제적으로 일본을 지원하는 행위는
김구 선생이 친일파 숙청 대상 1호로 지정할 만큼
큰 반민족행위에 해당됐다.



1948년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냈던
김승학이 작성한 원고에 기재된친일 인사 263명에 관한 명단 - 다액 국방금 헌납자 x36



10만원 이상 x19
김연수 (金秊洙) : 81만원과 물품
최창학 (崔昌學) : 임전보국단 이사
김치구 (金致龜) : 백미 1만석(10년간) 헌납
원봉수 (元鳳洙) : 백미 3천석
김성호 (金聖浩) : 20만원
박흥식 (朴興植) : 조선비행기주식회사 대표, 20만원
임훈 (林薰) : 12만원
산본승사 (山本昇司) : 10만원
이교식 (李敎植) : 10만원
대산계치 (大山啓治) : 20만원
손창식 (孫昌植) : 40만원
수묵심일 (水墨深一) : 10만원
이영구 (李英九) : 12만5천원
김용섭 (金龍燮) : 20만원
평산용웅 (平山龍雄) : 10만원
박기효 (朴基孝)
이병길 (李丙吉)
청목무일 (靑木茂一) : 20만원
남경이 (南耕二) : 50만원



1만원 이상 (17명 외 56인)
김순흥 (金淳興)
김정호 (金正浩)
민대식 (閔大植)
민규식 (閔奎植)
손홍준 (孫洪駿)
맹영옥 (孟永玉)
이병길 (李丙吉)
임종상 (林宗相)
장지필 (張志弼)
장황 (張璜)
박흥래 (朴興來)
한인수 (韓寅洙)
김상훈 (金相訓)
김상진 (金相鎭)
손창윤 (孫昌潤)
박우석 (朴宇錫)
백낙승 (白樂承) 외 56명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 교육, 종교계 x19

1948년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냈던
김승학이 작성한 원고에 기재된
친일 인사 263명에 관한 명단- 교육, 종교계 x19



정남수 (鄭南洙) : 목사 (1)
김활란 (金活蘭): 이화여전 교장 (9)
장면(張勉) :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연맹 간사, 과거 현재 교과서 등장 (1)
허하백 (許河伯) : 여성계 인사 (5)
신흥우 (申興雨) : 목사 (9)
이헌구 (李軒求) : 평론가 (숫자 없음)
이숙종 (李淑鐘) : 여성계, 교육계 인사 (1)
오긍선 (吳兢善) : 교육자 (1)
양주삼 (梁柱三) : 기독교 감리교 총리사 (2)
유억겸 (兪億兼) : 일본 기독교청년회 조선위원 (3)
유진오 (兪鎭午) : 교육자, 소설가 (9)
송금선 (宋今璇) : 교육자, 덕성여자실업학교장 (3)
황신덕 (黃信德) : 교육자 (6)
임숙재 (任淑宰) : 교육자 (2)
손정규 (孫貞圭) : 교육자 (1)
유각경 (兪珏卿) : 전 조선여자기청 전무 (1)
홍승원 (洪承嫄) : 여성계 인사 (1)
고황경 (高凰京) : 교육자 (1)
김성수 (金性洙) : 동아일보 사장 (2)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 언론계, 문학계, 연예계 x45

1948년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냈던
김승학이 작성한 원고에 기재된
친일 인사 263명에 관한 명단 - 언론계, 문학계, 연예계 x45



김기진 (金基鎭) : 평론가 (1)
박영희 (朴英熙) : 평론가 (3)
정인택 (鄭人澤) : 소설가 (2)
이희적 (李熙迪) : 변호사 (2)
이광수 (李光洙) : 소설가 (15)
주요한 (朱耀翰) : 시인 (13)
김동환 (金東煥) : 시인 (12)
김동인 (金東仁) : 소설가 (2)
모윤숙 (毛允淑) : 시인 (8)
현영섭 (玄永燮) : 녹기연맹 이사, 조선어 사용 폐지 주장 (1)
백철 (白鐵) : 문학평론가 (7)
장혁주 (張赫宙) : 소설가 (1)
이찬 (李燦) : 시인 (1)
김용제 (金龍濟) : 시인 (3)
최재서 (崔載瑞) : 국민문학 주간, 평론가 (1)
이석훈 (李石薰) : 소설가 (1)
정인섭 (鄭寅燮) : 문학인, 교육가 (5)
최승희 (崔承喜) : 무용가 (1)
오정민 (吳禎民) : 연극평론가 (1)
김정의 (金正義) : 일제 국민가요 작가 (1)
박경조 (朴景祚) : 일제 국민가요 작가 (1)
김용환 (金龍煥) : 가수 (1)
이용설 (李容卨) : 의학박사 (1)
홍해성 (洪海星) : 극작가 (1)
유치진 (柳致眞) : 극작가 (1)
김태진 (金兌鎭) : 극작가 (1)
박영호 (朴英鎬) : (1)
김화랑 (金火浪) : 배우 (1)
안석주 (安碩柱) : 영화감독 (1)
안종화 (安鐘和) : 영화감독 (1)
최인규 (崔寅奎) : 영화감독 (1)
박기채 (朴基采) : 영화감독 (1)
방한준 (方漢駿) : 영화감독 (2)
서강백 (徐康百) : 평론가 (1)
노천명 (盧天命) : 시인
홍양명 (洪陽命) : 경제학자 (1)
고승제 (高承濟) : 경제학자
안함광 (安含光) : 평론가 (1)
김억 (金億) : 시인 (1)
이창수 (李昌洙) : 평론가 (1)
배상하 (裵相河)
이영근 (李永根) : 미국에서 친일활동하다 일본인 도움으로 귀국 (1)
대조실신 (大朝實臣) : 내선일체 잡지 간행
송영 (宋影) : 극작가 (1)
박순천 (朴順天) : 친일시국강연 (2)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 정계, 관계, 실업계 x43

1948년 임시 정부 국무위원과 정치부장,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을 지냈던
김승학이 작성한 원고에 기재된
친일 인사 263명에 관한 명단 - 정계, 관계, 실업계 x43



이성환 (李晟煥) : 임전보국단 간부, 국민동원총진회 이사장 (15)
이승우 (李升雨) : 전 경성부회 의원, 전 국민총동원 이사 (15)
윤치호 (尹致昊) : 1945년 12월 사망 (13)
김연수 (金秊洙) : 경성방직 사장, 전 만주국 명예총영사 (8)
고원훈 (高元勳) : 중추원 참의, 전 도지사 (10)
신태악 (辛泰嶽) : 변호사 (5)
조병상 (曺秉相) : 종로경방단장 (10)
여운홍 (呂運弘) : 친일논문 발표, 시국 강연 (2)
인정식 (印貞植) : 사회주의에서 전향후 국민문학 등에 친일논문 발표 (3)
박희도 (朴熙道) : 전 동양지광 사장 (1)
이각종 (李覺鐘) : 전 총독부 촉탁, 국민정신총동원 연맹 상무이사 (1)
김한경 (金漢卿) : 동양지광 등에 친일논문 게재 (1)
김시권 (金詩權) : 전 도지사 (3)
박인덕 (朴仁德) : 전 청화여숙장 (9)
이정섭 (李晶燮) : 임전보국단 의원 (1)
김사연 (金思演) : 중추원 참의, 전 도지사 (3)
문명기 (文明琦) : 전 조선신문 사장 (1)
한상룡 (韓相龍) : 전 중추원 고문, 전 관동군 최고 고문, 조선총력연맹 사무국장 (10)
정교원 (鄭僑源) : 전 도지사 (3)
차재정 (車載貞) : 전 대동민우회 간부 (2)
이성근 (李聖根) : 전 충남지사. 전 매신(每新) 사장 (6)
박흥식 (朴興植) : 조선비행기공업회사 사장 (7)
박춘금 (朴春琴) : 민족학살 도모한 대의당 당수 (2)
안인식 (安寅植) : 총력연맹 참사 (2)
한규복 (韓圭復) : 중추원 참의, 충북지사 (3)
이종린 (李鍾麟) : 천도교 요인 (9)
최린 (崔麟) : 천도교 요인, 중추원 참의 (8)
최남선 (崔南善): 사학자 (4)
박윤진 (朴允進): 친일 시국 강연 (1)
이돈화 (李敦化): 천도교인 (3)
장덕수 (張德秀): 전 보성전문 교수 (7)
방응모 (方應謨): 조선일보 사장 (2)
김석원 (金錫源): 일본 육군 소좌 (1)
김동원 (金東元): 평양상공회의소 회주 (5)
박정형 (朴正衡): 경무국 경찰 (현재 세도 부림) (2)
정방오 (鄭方五): 전 일제 헌병대 (현재 세도 부림) (1)
김신석 (金信錫): 은행가 (1)
손영목 (孫永穆): 강원, 전북 지사, 국민동원총진회 이사 (8)
고일청 (高一淸): 임전보국단 간부 (1)
차재명 (車載明): 황국신민의 십자군 간부 (3)
문덕상 (文德常): 황국신민의 십자군 간부 (3)
박상준 (朴相駿): 귀족원 의원 (5)
김오성 (金午星): 공산주의 이론가, 문학 평론가. 일제말기 전향, 친일논설 게재. 해방 후 월북 (1)

2022년 6월 1일 수요일

나무위키 출처 명단


3.2. 일진회 관계자[편집]

3.3. 갑신정변/갑오개혁 인사[편집]

  • 윤치호: 이쪽은 공교롭게도 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시된다.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비슷한 성향의 박중양이 조선민족 자체가 답이 없다고 믿었던 반면, 윤치호는 안창호와 비슷하게 조선인은 교육을 통해서 개화가 가능하다는 쪽이며, 이순신 가문이 빚으로 이순신 사당의 위토가 일본인 투기꾼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즉각 달려가서 이순신 사당 매입과 빚을 대신 갚아주기 위한 모금 운동을 하고 매입 되는 것을 막아서 일제에게 찍혀 불령선인의 거두로 지목된 적도 있으며, 안창호의 보석을 탄원하는 등 독립운동가와 계속 교류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조선총독부 중추원직을 지내고 제국 의회 칙선 의원이었던 등 명백한 친일파이다. 어찌보면 조선인을 걱정하면서도 일제에 맞서싸울 용기가 없는 소시민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친일파치고는 그나마 개념인으로 볼수 있는 인물. 하지만 바로 밑에 나올 이규완 앞에서는 평범한 친일파에 불과하다.
  • 이규완: 실제 일제강점기 때 강원도지사 등의 고위직을 지낸 것은 맞으나, 다른 친일파들과 달리 평상시 생활에서 성실하였으며 악습근절에 앞섰고 신간회물산장려운동 등에 참여하였으며 조선인 참정권 및 자치론을 주장하였고 여성들의 인권향상을 주장하던 인물이다. 친일파로 분류되어 있지만, 이 사람은 최소한 창씨개명, 병력동원, 공출, 국가에 기부 등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쟁관련해서 참여한 것은 조선인 참전병사 위문품 후원회 및 원조처럼 순전히 조선인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흠이라면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고 현실성이 낮다고 본 것 뿐, 여타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비교할 수 없으며, 방식이 약간 뒤틀리긴 해도 독립운동 못지 않게 조선인을 지키려고 한 인물이다.[2] 사후에도 김구이승만 양쪽에서 조문단을 보내왔을 정도로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은 편이다.

3.6. 관료

[편집]

  • 김대우: <황국신민의 서사> 입안자
  • 박영철: 대한제국 군인 출신이자 배정자의 셋째 남편으로, 전라북도 참여관과 함경북도 및 강원도지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동민회 부회장 등을 지냄.
  • 박중양 : 여타 친일파들과는 달리, 신념 자체가 친일이었던 사람이다. 해방 이후 이광수나 여러 친일파들이 자신의 친일행적을 부정하거나 사과하고 있었을 때, "나는 떳떳하고, 조선은 망해야 할 나라였다"고 주장하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친일파보다는 구한말 행태 내지 추태에 환멸을 느끼고 아예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에 가깝다. 이 주장을 했을 시기에 개화파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무고하게 처형당한것에 충격받고 절망하였다. 그가 끼친 악행들이 비판 받아 마땅한것과 별개로 계기만큼은 (그의 입장에서) 이해여지가 있는 편이다.
  • 박상준
  • 사광욱: 일제 말기에 고등문관시험에 패스하고 판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 석진형
  • 안용백: 이 인간은 나중에 해방 후 총선 후보로 나서면서 부정선거까지 저질렀다.
  • 염창섭: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1910년 한일합병 후 일본 육사를 나옴. 일본군 장교로서 시베리아에도 출병한 바 있으나 예편하고 만주 일본영사관에서 일하며 민회 창설을 주도한 후, 이사관과 참사관 등을 역임함.
  • 유성준, 유만겸, 유억겸 형제.
  • 유홍순: 만주국 사무관 및 간도성 차장을 지냈고, 김동한 동상 건립도 주도함.
  • 윤명선: 윤영렬의 손자로, 만주국 간도성 민생청장 역임.
  • 윤치오: 윤영렬의 장남으로, 중추원 찬의 역임.
  • 윤치소: 윤영렬의 차남으로, 중추원 참의 역임.
  • 이경식: 충북 괴산, 진천,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후 경학원 사성, 중추원 참의까지 지냄. 그 외에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임전보국단 등지에서도 활동함.
  • 장헌식
  • 조병상: 일본명 가야마 시게루(夏山茂).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조선지원병후원회 이사 등을 지냄.

3.7. 직업형 친일인사[편집]

  • 김동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1921년 자유시 참변 후 1924년경에 전향해 간도협조회를 만들어 독립운동 탄압 공작을 펼침.
  • 김두정: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로 1933년 조선공산당 재건투쟁협의회 사건으로 복역하여 1935년에 전향했고, 1939년 가출옥 후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상임감사 겸 서무부장을 지냄.
  • 김인승 : 구한말 이전 인물. 그리고 임종국이 지목한 친일파 1호. 1876년 일본 외무성의 외국인 고문으로서 강화도 조약 체결에 도움을 준 인물이다.
  • 선우순
  • 이영근
  • 인정식: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 야학사건 주도자로 검거된 후 <삼천리> 11월호 기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향 의사를 밝혀 <동양지광> 편집위원으로서 내선일체론 관련 글을 발표함. 대동민우회 위원 및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간사 등도 역임함.
  • 박춘금: 일제강점기의 중의원 중 유일한 조선인
  • 현영섭 : 일본명 아마노 미치오(天野道夫). 경성제대 출신으로 무정부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한 뒤 변절하여 녹기연맹 및 내선일체실천사 등지의 이사를 지내며 조선어 전폐론 등 온갖 친일 이론을 제창함.
  • 차재정: 서울청년회, 신간회 등지에서 일하며 1929년 광주학생운동 때 투쟁 확산에 주력하다 2년을 복역했고, 비밀결사 혐의로 잡혀갔다가 무혐의로 방면된 후 전향함. 1936년에는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비난하는 견해를 폈다.

3.8. 경찰[편집]

  • 김극일: 신의주경찰서 경부로 이륭양행 홍성일 등 독립운동가 4명 체포. 이후 양양군수, 인제군수 등을 지냄.
  • 김덕기반민특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악질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설이 있으나, 독립투사 정이형 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전쟁 직전에 정릉 근처의 산에 갔다가 추락사했다 한다.
  • 김창영: 경찰 출신으로 금산군수를 거쳐 1937년 만주국 치안부에서 김일성의 참모 임수산 등의 귀순, 김재범 등 항일연군 수백명을 체포하는 데 기여함. 1943년 귀국 후 전라남도 산업부장 역임.
  • 김태석강우규 열사를 고문했다고 알려진 친일 경찰
  • 노덕술: 일본명 마츠우라 히로(松浦鴻).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고문경찰이었다. 해방 후에도 독립운동가를 치욕스럽게 해서 김원봉이 월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원봉이 침략자로 타락하기 전이었으니 훗날 6.25까지 고려하면 무고한 사람을 악마로 만든것이나 다름 없다.
  • 이성근: 대한제국 말기인 1907년 황해도 관찰도 순검과 해주경무서 순검으로 경찰 인생을 시작하여 1910년 한일합병 후 황주, 신계, 음성, 청주경찰서 경부 등을 거쳐 1920년 평안북도 경시 겸 고등경찰과장으로 부임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박치의, 보합단원 백운기, 정의부 소속 독립군 등을 체포하는 데 주도했다. 1927년 경찰직을 떠나 전라남도 내무부 산업과장, 충청남도지사, 매일신보 사장 등을 역임함.
  • 유창렬: 1920년 김도원 등 보합단원 체포에 기여한 친일경찰.
  • 최연: 1938년 혜산 사건을 수사하며 박달 등 3백여 명의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해 악명을 떨친 친일 경찰. 해방 뒤 경기도 경찰부 경무과장을 지냈다.
  • 최운하조선총독부 경무과에서 근무하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찰업무를 맡았으며 해방 뒤 서대문경찰서장, 서울시 경무국장 등을 지냄.
  • 최태민일명 조선의 그리고리 라스푸틴. 일제강점기 황해도 지역에서 순사로 근무,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던 친일매국노였고 해방 이후엔 사이비 종교 영세교 교주 및 사기꾼으로서 정치, 사회, 종교계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망친 온갖 적폐의 만악의 근원 1호.[3]
  • 하판락: 이놈은 진주 하씨 문중에서 대놓고 숨기려다 문중 전체가 개망신을 당했다.
  • 허진종(許振鍾)
  • 홍순봉: 독립운동가와 동명이인으로, 경부까지 오르며 국경경찰로서 반 만주국 항일세력을 소탕했고, 퇴직 후 만주 간도성 경무청 간부를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후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 경찰국장으로서 진압 작전을 주도하여 1952년에 내무부 치안국장까지 지냈다.

3.9. 군인[편집]

  • 김기원: 일본 육사 출신으로 공병 중좌를 지냄.
  • 김백일흥남철수 항목 참조. 만주군 출신이라 민문연이나 시민단체의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 김석원일본군 출신으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고, 학병권유를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성남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서전에 "일제식민지시대에 오래토록 일본군인 노릇을 했다는 것은 나의 생애 중에서 가장 큰 불명예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독립군 사령관이었던 지청천의 가족을 돌봐준 걸 보면 어느 정도 양심은 있던 사람이다. 물론 이규완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뿐이다.
  • 김인욱: 김석원과 일본 육사 동기로, 1932년 강계 수비대 제1중대장으로서 항일 무장대를 소탕했고, 1937년 간삼봉에서 김일성 및 최현 부대와 싸웠다.
  • 김종원 : 이쪽은 친일파 이전에 인간인지부터 의심해야 될 수준으로 인육을 먹는것을 즐겼으며, 해방 후에는 대놓고 학살을 저질렀다.
  • 김준원: 김기원의 동생이자 김정렬 전 국무총리의 부친으로, 일본 육사 졸업 후 시베리아에 출병했다가 1924년 보병 대위로 전역함. 이후 교사 및 사업가로 여생을 보냄.
  • 박정희: 일본명 타카기 마사오(高木正雄). 만주군관학교 2기 및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편입) 출신, 만주군 장교(최종계급 중위)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4]
  • 박임항: 만주군관학교 1기 출신.
  • 백선엽: 일본명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5] 간도특설대 중위. 간도특설대(독립군과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한 부대) 3기로 있었다. 광복 이후에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낸 공로가 있는데다 이후 대한민국에 노고한 공로를 감안해 일반적인 친일파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할 여지는 있지만, 일생 전체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갈리는 인물이다. 일단 일제강점기 친일 경력 자체만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 유승렬: 유재흥의 부친으로, 일본군 대좌로서 나남 제19사단, 관동군 등을 거쳐 태평양 전쟁 말기 뉴기니 전선에서 병으로 입원하다 1945년 패전 후 귀국했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부산 및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등을 지냄.
  • 윤상필: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 침공에 참여했고, 현역 군인으로서 만주국 협화회 이사를 지냈다. 기병소좌 예편 후 협화회 중앙본부위원회 위원, 총무청 참사관 등을 지냄.
  • 이병무: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주도하였고, 이에 저항한 군인 및 의병을 진압하도록 명령하였다.
  • 이희두: 구한국 장교를 일본군 장교로 전환한다는 칙령에 따라 일본 육군 소장에 임명되어 일제 조선군사령부로 배속, 정5위로 서위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기계체조단체를 조직하여 기계체조 보급.
  • 정훈
  • 최정근: 1943년 일본군 항공병 소위 임관 후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 때 가미카제 특공대원으로 참전하여 미 함선으로 돌격, 자폭함.
  • 최창식 : 명백함 친일파임에도 6.25 전쟁때 억울함으로 인해 친일파 중에서는 드물게 후손들에게 까이지 않는 편이다. [6]
  • 홍사익 - 일본 육군 중장. 그가 골수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그가 한 발언에서 알 수 있는데,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8월 10일 그의 부관이 조국 조선의 독립을 축하한다고 했으나, 그는 "이 제복을 입고 있는 한 나는 이 제복에 충성하고 싶다"고 답했다. 결국 그는 1946년 필리핀에서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3.10. 그 외[편집]

  • 권상로: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한일합방에 찬성한 불교 승려로, 법명은 퇴경이다. 조선총독부의 친불교 행적을 찬양하며[7] 2차대전에서 일본을 위해 승리하는 것이 곧 성불하는 것이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임전의 조선불교>등을 저술했다. 해방 이후엔 불교계 미션스쿨인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에 임명되었다. 김활란보다 악질이다.[8]
  • 권혁주: 만주국 사법국 심판관으로서 흥아청년구락부 조직에 참여했고, 팔로군을 도운 민간인들에게 사형을 때리기도 했다. 1943년 사직 후 일심회를 조직함.
  • 김경천(金敬天)[9]: 대장인 전봉준을 팔아넘긴 배신자.
  • 김기수
  • 김준영
  • 김병제: 천도교 신파로서 시중회에 참여했고, 국민총력 천도교연맹 등지의 친일단체의 간부를 지냈다. 1945년 광복 후 월북해 19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냄.
  • 김기창: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의 그림 여러 작품을 그림. 다만 말년에는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
  • 김길창: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광복 이후 까지 대한민국의 장로회 교단을 주도했던 인물이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장로회의 신사참배를 주도하여 대한민국의 장로회에 크나큰 오점을 남겼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대한민국 장로회 교단의 분열에 결정타를 날리게 되었다. 부산 대표 개신교 사학재단이자 부산 최대 사학재단인 학교법인 남성/국성/한성/훈성학원의 설립자로도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백선엽의 개신교 버전으로 볼수 있다. [10]
  • 김동진: 위 김동진과 동명이인으로, 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냄.
  • 김상회: 매일신보 편집국장, 경성일보 이사,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냄.
  • 김성수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후 보전을 고려대학교로 승격시키고 고려중앙학원을 설립. 일제 말기에 전시체제 홍보 및 학도병 지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한 흑역사가 있다.
  • 김순흥: 배우 이지아의 조부. 참고로 이지아의 사촌동생이 김순흥의 친일 행적을 부인했다가, 빈축을 산 바 있으며, 덩달아 이지아의 이미지까지 하락했다.
  • 김억
  • 김연수: 역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김성수의 동생이며 경성방직(현 경방) 2대 사장이자 삼양그룹 창업주. 중추원 참의와 만주국 명예총영사를 지낸 행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서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 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나름대로 자기 반성의 글을 썼다.
  • 김용제: 일본 좌파문단에서 활동하여 4년간 복역 후 조선으로 강제 송환됐고, 친일 노선으로 변절하여 <동양지광> 편집위원으로서 친일 시 등을 발표함.
  • 김용주: 일본명 카네다 류슈(金田龍周). 섬유업체 (주)전방의 창업주이며 김무성의 아버지로 알려졌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 김은호: 호는 이당으로 표준영정 제작 참여자이자 세조 어진 화가로도 유명하나, '금차봉납도'라는 친일 그림으로 흑역사를 만들었다.
  • 김인승, 경승 형제: 형인 인승은 서양화가이자 이화여대 미대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동생인 경승은 조각가이자 국전 심사위원, 예술회 회원 등을 지내며 백범 김구, 충무공 이순신, 도산 안창호, 안중근 의사 등의 동상을 만들어낸 분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제 시기에 전쟁 협력 작품을 조선미술전람회에 올려 선전 연속 4회 특전, 총독상 등을 수상하며 조선미술가협회 간부로 활동하여 전람회에서 나온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친 흑역사가 있었다.
  • 김지태: 친일인명사전에는 없긴 한데 행적을 보면 군수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친일재벌이다.
  • 김태진
  • 김태흡: <불교시보> 발행인으로서 황국 정신 고취, 황도 불교, 징병제 지지 강연에 적극 나섦.
  • 김활란: 일본명 아마기 가츠란(天城活蘭). 이화여자전문학교 제7대 교장. 이화 최초의 한국인 교장이다.[11] 이화학당 고등과와 대학과를 졸업한 후 모교 교장이 되었다. 교육과 기독교 선교에 힘썼다고 하나, 자국 여자들을 위안부정신대에 팔아먹은 자로 절대로 사람이 아니며, 교육가로서는 완전히 타락한 인물이다. 유관순 열사가 존경했던 선배였다고 한다.[12]
  • 김희선: 신민회 출신으로 일경에 체포된 후 풀려나 평남군수, 개천군수 등을 지냄. 다만, 3.1 운동 직후 다시 독립운동가로 전향하였다.
  • 권영세: 경북 대구부윤과 초대 달성군수를 역임했다.
  • 나웅
  •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한국 가톨릭계의 대부인 성직자인데, 이 사람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일단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 건 맞으나, 이를 두고 교황청의 결정에 순응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13]
  • 노수현: 호는 심산(心汕)으로 조선일보에서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만화 <멍텅구리>를 연재하여 유명세를 타다가 해방 뒤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창시하고 제자를 수도 없이 양성하여 한국 동양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손꼽히나, 친일 계열 잡지인 <신시대> 1941년 1월호에 멍텅구리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만화를 발표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지원할 것을 역설했다는 이유로 2008년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노주봉
  • 문명기: 일본명 후미아키 기이치로(文明琦一郞). 별칭 헌납병 환자야만기라고도 불린다. 이 자는 경상북도 영덕군을 기점으로 제지업에서 시작해 금광 인수로 돈을 왕창 벌어서 1936년에 친일 기업인 중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일제에 헌납한 것을 시작으로 1943년까지 육/해군에 각각 2만 원, 4만 원을 기부한 뒤 마침내 자신의 구리광산 2개를 기부하는 등 헌납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의 종손 문태준은 교수, 의원, 보사부 장관 등을 지낸 바 있다.
  • 민규식
  • 민영기을사조약 체결 당시 탁지부 대신(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을 때 을사오적과는 달리 조약체결에 반대했으나 후에 1910년 국권피탈 이후에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와 이왕직장관을 지냈다.
  • 방한준
  • 서정주: 일본명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静雄). 광복 후 반공/우익 노선을 걸으며 군사독재정권을 찬양하기도 했던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 서항석
  • 선우순-선우갑 형제: 형은 대동동지회장, 동생은 일본 경시청 고등계 형사를 각각 지냄.
  • 선우영빈: 일명 하야시. 하지만 여타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다른 행보를 걸어온 편이며, 친일파치고는 그나마 개념인 축에 속한다.
  • 손석도
  • 신상묵: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前국회의원 신기남 아버지.
  • 심영: 일본명 아오키 진에이(青木沈影). 우리가 아는 그 고자 심영이다. 문예봉과 같이 친일반민족+친북을 한다. [14]
  • 안석영
  • 안용백경남고등학교 초대 교장. 교내 캠퍼스 안에 흉상을 설치하였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이유로 없애라는 의견이 오간다.
  • 안익태: 일본명 에키타이 안. 애국가 작곡한 그 안익태 맞다! 애국가를 작곡한 양반이 왜 저런 짓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 안인식: 조선유도회 창립 대표이자 경학원 사성, 조선유도연합회 상무이사 겸 교육부장으로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겸 평의원 등도 맡음.
  • 안준생: 이 사람은 안중근의 아들로,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크게 공헌을 한 분이지만, 정작 그의 아들은 일본 제국의 개 노릇을 한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다...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반론이 제기되었다. 그것도 주류 학계에서!
  • 여운홍독립운동가 여운형의 동생 원래는 형처럼 독립운동가였지만 일제강점기 후반에 절망하며 전향했다.
  • 유광렬: 전 매일신보 편집국장.
  • 유명한: 일본명 야나기하라 히로시(柳原博). 유일한 박사의 동생이자 유유그룹 창업주인 유특한 선생의 형. 형과 동생과는 달리, 골수 극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어 집안을 엿먹였다.[15] 게다가 액수로만 따져도 김순흥은 그대로 쌈싸먹는다.[16]
  • 유치환(?): 명백히 친일파임이 밝혀진 형 유치진과는 달리, 청마의 친일 행적을 두고 그를 본격적인 친일파로 볼 수 있느냐는 상당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일단은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고 단순히 부일파로만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래도 당시에 청마가 현실 순응적인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다.
  • 이갑수: 군국주의 파시즘을 매개로 한 우생학의 잔재로 인해 한센병 환자 차별이 70년대까지 이어졌다. 악행 수준으로 따지자면 위의 송병준과 쌍벽을 이룬다.
  • 이규서: 그야말로 위의 이갑수, 송병준과 맞먹는 악질 친일파. 이쪽은 친일 활동은 물론 자신의 삼촌 이회영을 일제에 밀고하는 패륜까지 저질렀다.
  • 이규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이며 만주국 사무관급 문관 출신.
  • 이광수: 일본명 가야마 미츠로(香山光朗).
  • 이만수: 경성고무 창업주. 일제 말 '大平晩秀'로 창씨개명 후 '조선임전보국단'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39년 군산신사 개축비 1천 원, 1940년 전북 군산향군분회 사격장 건설비 명목으로 1,700원을 각각 냈고, 1944년에는 중일전쟁 관련해 일본 육군성에 국방비 16,000원을 낸 공로로 쇼와 덴노로부터 감수포장을 받는 등 친일 행적을 벌였다. 1945년 8.15 해방 후 해당 행적으로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5개월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2012년에 군산시가 그를 포함해 임병찬, 채만식, 이영춘 등과 함께 '근대인물 5인'으로 뽑아 조각상을 만드려다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로 제외되었다.
  • 이명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참사, 경학원 사성 등을 지내며 기고 및 지방 순회강연을 통해 징병제 실시와 국체명징에 대해 설파함. 또한 싱가포르 함락 및 미나미 총독 찬양 시도 지음.
  • 이병도: 이 사람은 조선사편수회에서 촉탁으로 근무한 것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학에 많은 기여를 한 양면이 있다.
  • 이봉룡
  • 이봉창: 일본으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일본인이 되고자 노력했으나, 일본에서 갖은 차별을 받아 생각이 변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해 히로히토 덴노 암살미수 의거(義擧)를 일으켰다. 사실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그냥 일반 조선인이라서 일본 측에서도 쓸 이유가 없었긴 하다.
  • 이상범화가. 호는 청전. 동아일보에서 삽화를 그리는 미술 담당 기자로 근무하던 1936년,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에 가담하고, 반도총후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국방헌금을 모금하기 위한 국책 기획전에 참가하여 친일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상협: 매일신보, 동아일보, 중외일보 등을 거친 언론인으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관, 조선지원병제도제정축하회 발기인 등을 지냄.
  • 이석규: '일진회' 창설자 이용구의 아들로, 부친이 세운 시천교를 '대동일진회'로 개편하며 창씨상담실 운영, 한일병합 공로자 추도회 및 감사 위령제 등을 주도함.
  • 이성재: 경성의학전문학교 중퇴자로 만주에서 무역업을 하다 <만몽일보> 창립위원으로 나섰으며, <만선일보> 출범 후 부사장 및 사장을 지냈다. 그 외에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 상무위원을 지냄.
  • 이유립
  • 이재호
  • 이종찬일제강점기 중에는 분명히 친일파가 맞았으나, 해방 후에 크게 회개하고 독립 대한민국을 수호하고자 6.25 전쟁에서 열심히 싸웠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군의 정치개입을 막으려 했다. 심지어 친일파 시절에도 대인배스런 인품의 소유자이자, 부하를 사랑하고 민간인을 존중하는 덕장으로 칭송이 자자했기 때문에, 이 점에서 친일파로서의 이종찬은 위의 김석원이나 이규완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17]
  • 이윤용이완용의 형으로 형제가 전부 매국노가 되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 이찬: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지은 걸로 알려진 월북 문인으로, 일제 때 카프 중앙위원이었으나 1930년대 후반 이후 계급성이 퇴색되다 못해 1941년 이후 친일 노선을 걸은 바 있다.
  • 이회광
  • 이효석: 이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사연이 정말 애절하다. 생활고로 아내와 차남이 병을 앓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것이다. 게다가 더 안타까운 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지 얼마 안 가서 두 사람은 병사하고 만다는 거다. 이 일과 더불어 자신의 변절을 비웃는 발언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친일파 노릇을 때려 치운 일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 후손들(일찍 사망한 차남의 후손을 제외한)마저도 이렇게 살고 있다.
  • 이희덕: 전 일진회 간부, 간도 룽징 조선인거류민회장.
  • 임문호일제 강점기 중에 천도교의 주요 인사로 활동하던 종교인인데, 태평양 전쟁 중에 변절하여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바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 의 아버지 되시겠다.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는데, 아들 임종국이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알고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아버지 이름을 넣을까 하고 고심하던 차에, 임문호 본인이 직접 "내 이름도 넣어라. 거기에 내 이름이 없으면, 그건 죽은 책이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이름을 수록할 것을 간곡히 요구하여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 장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긴 했지만 그의 제자였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장면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은 정치가 김대중 등이 반발한 바 있다. 요즘도 무리한 선정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장우성(?): 호는 월전으로 이순신유관순 등의 표준영정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나, 1943년에 조선총독부의 주최로 열린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 수상 시상식'에 '부동명왕상' 모델 사진을 올리는 바람에[18]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참고.
  • 장은산: 만주군관학교 3기 출신.
  • 정광조: 의암 손병희의 사위로, 1942년부터 천도교 교령이 된 후 국민총력 천도교연맹 이사장 겸 평의원을 지냄.
  • 정인과: 안창호의 수행비서이자 임시의정원 부의장이었으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간사, 애국기헌납기성회 발기위원장 및 회장 등을 지냄.
  • 정춘수개신교(감리회먹사. 1919년에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었으나,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구속되고 전향하여 친일 활동에 나서며 비행기 헌납, 교회 종이나 대문 헌납신사참배 등을 촉구했다.
  • 조두남
  • 조명암
  • 조병상: 동민회 이사로서 조선농업, 한양택시 사장 등을 지내며 전조선시국강연반 감사, 경기도애국기헌납기성회 발기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등을 지냄. 1939년 경기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장남 조태환을 지원병으로 입소시킨 후, 차남도 학도병 1호로 지원시킴.
  • 조택원
  • 주요한: 일본명 마츠무라 고이치(松村紘一).
  • 채만식: 왜 취소선인지는 해당 항목으로.
  • 최린: 일본명 가야마 린(佳山麟).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이나 변절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친일 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했는데, 공판정에 같이있던 이광수가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한 것이다"라고 하자 "입 닥쳐"라 말하기도 했다. 49년 4월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이후 행적은 58년에 사망했다는 것 외에 알려진 사실이 없다.
  • 최안국: 천도교 신파이자 부교령.
  • 최재서
  • 최정규: 친일 무장단체 '보민회'의 리더로 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선 인물.
  • 최정희
  • 최창학: '금광왕'으로 불린 광산업자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및 배영동지회 평의원 등을 지내며 국경 경비용 화물차 3대를 평안북도 경찰부에 기부한 걸 시작으로 조선군사령부에 애국비행기 1대 및 군용기 6대 제작비 40만원,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10만원 등 막대한 자금을 냈으며, 그 외 정주 오산학교 등지 사회단체와 학교에도 거금을 기부했다. 1945년 8.15 광복 후 귀국한 백범 김구에게 자택 '죽첨정'을 4년 간 빌려주기도 했다.
  • 한상룡: 일제 시기 조선의 금융거물.
  • 함상훈: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조광> 필진으로도 활약함.
  • 허영
  • 현제명: 일본명 구로야마 즈미아키(玄山濟明).
  • 홍인화
  • 홍종철[19]
  • 홍진기: 일본명 도쿠야마 신이치(徳山進一). 법조인이자 중앙일보 2대 사장 및 초대 회장. 이건희 부인 홍라희의 아버지.
  • 홍택기
  • 황철: 강제징용 선전영화에 계속 출연했다.

참고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초기의 기준은 장교뿐만 아니라 관공서의 말단 공무원까지 포함되었다.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축소되었고, 한민당과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면 공포와 불안을 조성할 것"이라는 핑계로 계속 축소하였고, 결국 관련법안을 1951년에 폐지시켰다.

3.11. 주의할 점[편집]

주로 어르신들 사이에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입대한 사람은 다 친일파냐""창씨개명한 사람은 다 친일파냐"는 소리가 나오는데, 이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기준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나온 오해이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기준은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이기 때문.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친일 단체에 몸담은 모든 이를 친일파로 규정하진 않는다고 한다. 링크[20]

또 '귀족일본육군사관학교 및 만주군관학교 졸업 경력만으로도 친일파냐?'라고 하는데, 한일합방에 공은 세운자에 한해 조선귀족이 된 것이고, 자발적으로 일본군이 되기 위해 일본육사, 만주군관학교에 간 사람만 친일파인 것이다.[21] 작위를 거부하거나, 한일합방으로 인해 자동으로 일본 육사로 넘어가는 바람에 일본 육사 출신이 되었고 이후 독립군에 투신한 사람은 친일파에서 예외이다.[22]

또한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이 이런 점만 가지고 애먼 사람들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글을 올려서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이들에 의해 오해를 받은 대표적인 유명인사로는 김수환 추기경이 있다.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자 선정 기준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을 정치권에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누구누구 아버지는 일제가 세운 은행의 은행원이었으니 친일파 자손이다라는 식인데, 애초에 저 명단에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친일적인 기관에 소속되었다 할지라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명단에 오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잠시 관제 단체에 몸담았던 김순남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단지 일제하에 단순히 부역하거나 공무원 했다는 정도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 하지 않는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기준은 고등문관에 해당하는 군수, 검사 이상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검사는 10명이 채 안되었다. 이렇게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도 높아서 아무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반열에 오를 수가 없었다. 당시 2천만 인구 중에서 극 소수만이 친일반민족행위자에 해당 한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족주의 좌파 성향 역사학자 한홍구도 문제 제기 과정에서 편향성이 보이며, 단순 폭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 기사 따라서 후속 연구 과정에서 현재의 명단은 얼마든지 수정, 보완될 가능성이 있다.

진짜 비난 받아야 할 사람들은 과거 흑역사는 감추고 잘난 척을 하는 일부 높으신 분들이다. 앞서 언급한 한홍구 교수도 당시 언론의 친일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민족정론지라는 자랑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함부로 집안 자랑을 하는 후손들 때문에 저런 사실이 까발려지는 경우도 있다.

일제 시기 근무했던 말단 공무원들조차도 일제에 협력한 과거사를 뉘우치기도 하는데, 1986년에 정년퇴임한 김남식 교사(1919~2010)는 일제 시기 제자들에게 일본어만 가르치도록 강요하는 등 민족으로서 씻지 못할 죄를 참회하고자 1968년부터 2010년 작고 때까지 서울 경희대 앞에서 청소를 해왔다.

3.12. 잘못 알려진 사례[편집]

지금은 잊힌 황당한 루머 중에 싸이와 보아가 을사오적의 후예라는 루머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기사로도 언급되었는데 그 근거라는 게 성이 박씨권씨라는 것이어서 당연히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보아의 경우에는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는 루머성 기사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래 나온 명단은 정말로 진지하게 논란이 되었던 사례이다. 당사자로서는 정말 억울할 일.
  • 김수환 - 신학생 시절 학도병으로 강제징집 당했다.[23]
  • 이난영 - 일제강점기에 친일 가요를 부른 행적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지만,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지속성, 반복성, 적극성이 없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기사
  • 현승종 - 역사학자 한홍구가 해명해 주었지만, 결국 건국대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애초에 논란이 된 계기가 외부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 본인의 참회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즉, 고백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일이었다는 얘기.